정치

[성기노 칼럼] 윤석열-이재명 영수회담 결과 성적표가 나왔습니다

성기노피처링대표 2024. 5. 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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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미리 준비해 온 메시지를 품에서 꺼낸 뒤 윤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예상대로,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4월 29일 130분 영수회담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끝이 났다. ‘첫술에 배부르랴’며 여야 ‘최고지도자’의 만남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번 영수회담은 양측 모두 22대 국회에서도 ‘닥공’을 하기 위해 의미 없는 빌드업만 열심히 하는 모양새였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은 국가의 최고지도자라는 ‘자의식’이 강해 웬만해선 야당 대표를 만나주지 않았다. 마주 앉는 순간 두 사람은 ‘동격’이 되고 그러다 보면 국가 의전순위 1위인 대통령의 권위도 깎아내려진다는 집권세력의 지나친 권위 의식이 지배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사는 한 정치는 여야의 협의와 협력이 필수적이지만 행정부 수반을 자처하는 대통령은 여야의 정략적인 관계를 떠나 초당적으로(?) 국가 이익을 위해야 한다는 과도한 사명감도 한몫했다. 

그런데 이런 이유에다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를 ‘범죄인’으로 인식하며 만남을 거부하는 이유 한 가지를 더 얹었다. 앞서 열거한 이유 등으로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야당을 가장 무시한 국가지도자로 꼽힌다. 어떤 이유에서든 헌정질서가 유지되는 한 이재명 대표는 야당의 수장인데 윤 대통령은 그를 검사가 피의자 다루듯이 무시하고 만나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윤 대통령은 ‘정치의 반쪽’은 아예 없다고 생각하면서 야당을 ‘투명인간’ 취급해왔다. 그 뒤 ‘이제부터 정치를 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선언은 정치를 ‘협상 아니면 배제’의 이분법이 지배하는 그의 ‘유.무죄 인생론’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라는 점에서 사실 그리 기대할 게 없다. ‘야당과 협치를 해보니 역시 정략적인 주장만 하고 국익에 해가 된다’는 ‘악의 축’ 논리를 내세워 파투(破鬪)를 낼 게 뻔하다. 윤 대통령은 집권 2년차인 22대 총선에서 역대 최악의 집권여당 대패를 당하고서야 야당 대표에게 고개를 숙이는 척했지만, 향후의 협치 정국도 난망(難望)이다. 

한편 이재명 대표는 카메라기자들이 물러가려는 것을 막으면서까지 품속에서 준비해온 10장짜리 ‘윤석열의 죄목’을 들이밀었다. 이 대표는 마치 ‘국민 영장’을 들고 용산 대통령실을 압수수색 나온 검사가 피의자에게 ‘미란다 고지’를 하는 것처럼 그 내용은 형식적이었지만 ‘독재’같은 날이 바짝 선 선거 패배 리스트를 15분동안 쭉 읽어 내려갔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여야 ‘대표’의 첫 만남에서 아이스브레이킹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왜 녹이고 싶지 않았겠느냐마는 총선에서 그의 등을 떠밀어 마침내 용산 대통령실까지 ‘쳐들어가게 한’ 국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4월 19일 오전 강원 춘천시 중앙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에게 받은 과일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윤석열 정권 출범 2년만에 겨우 성사된 여야 영수회담의 성적표는 어떨까. 먼저 이재명 대표를 보자.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이번 영수회담으로 야권의 실질적인 원톱 대선주자 ‘면류관’을 윤 대통령 앞에서 보란 듯이 썼다는 점에서 남는 장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재명 대표는 아직도 ‘정치 초년병’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대표는 정무적 디테일이나 일의 완결성, 그리고 승부사적 기질 면에서 아직까지 부족한 면이 많이 보인다. 정치적 강단이 있다기보다 여전히 정치를 감성의 영역에서 이재명 개인의 기분으로 풀어내려는 미성숙한 접근방식도 엿보인다. 

사실 이번 영수회담은 누가 봐도 윤 대통령이 먼저 제안을 했던 것이기에 이 대표로서는 급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총선에서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체면을 구기고 대패한 대통령이 그 높은 콧대를 낮추고 야당 대표에게 ‘좀 살려주세요’ 하는 상황이라면 더 확실한 ‘전리품’을 챙겼어야 했다. 이는 탐욕의 영역이 아니라 국민들이 그에게 건네준 윤석열 실정 2년에 대한 피해 구상권이라는 점을 그는 명확히 인식했어야 했다.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의제를 정하지 못하고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 겪을수록 급한 쪽은 용산이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야당 대표를 ‘일단’ 먼저 만나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반면 이 대표 입장에서는 만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 만남 자체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는 성급함을 노정했고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과실 하나 따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 대표가 총선 대승과 윤 대통령의 ‘잠깐 고개 숙임’에 업이 돼 ‘의제 없이 만나자’고 대승적인 결단을 내린 것같이 보이지만 이는 국민이 밀어준 윤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심판의 책임을 도외시한 측면이 있다. 대통령 면전에서 차마 ‘김건희’라는 말을 하지 못해 ‘가족’이라는 단어를 마지막에 바꾼 사람도 이 대표였다. 그 정도는 자신도 부인 김혜경 여사가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동병상련’으로 예우를 갖춘 것으로 보이지만 사전에 의제 합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총선 대승에 도취된 이 대표의 안일하고 느슨한 대응이었다. 

 

지난 2023년 12월 15일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이 성남 서울공항 2층 실내행사장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오른쪽은 부인인 김건희 여사.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민주당이 주장하는 2개의 특검 가운데 김건희 여사는 빼더라도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은 확실하게 의제로 내걸고 윤 대통령의 결단과 함께 특검 수용을 이끌어내는 최소한의 프레싱을 했어야 하는데 이 대표는 너무 물렁하게 그냥 물러나 버렸다. 오히려 윤 대통령이 ‘다음에는국회에서 회담을 이어가자’는 승자의 여유(?)마저 보이는 장면이 대통령실의 의제 성과로 주목받은 것은 이 대표가 상대에게 반사이익만 안겨준 꼴이 됐다. 

이런 점을 보면 이 대표가 총선 압승의 의미를 국민들이 ‘이재명 개인’에게 준 ‘대권행 티켓’ 선물 정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15분 동안 그냥 총선 패배 고지서를 읽기만 했지 전혀 실리를 챙기지 못한 것은 이 대표의 전략적 판단 미스다. 윤석열 대통령이 옴짝달싹하지 못할 제안을 해 그 답을 기다리는 모양새를 연출했어야 ‘고집불통’ 용산도 움직일까 말까인데 완전히 풀어줘버린 꼴이 돼 버렸다. 

여의도 ‘정치밥’을 10년 먹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영수회담 결과에 대해 이재명 대표에게도 아쉬움을 표하는 말을 했다. 이 대표는 “아쉬운 건 이재명 대표가 18분 정도 자기가 써온 것을 읽으면서 기분은 냈는데 두세 개 정도는 안들어 주면 판 없자, 이 정도의 강렬한 메시지가 필요했다. 특히 특검 이런 것들은 선결조건으로 걸고 애초에 만나느냐 안 만나느냐를 결정지었어야 되는데 본인(이재명)이 생각이 너무 많았던 거 아닌가. 저라면 선결과제로 채상병 특검을 걸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재명 대표로서는 그리 큰 손해는 아니다. 시간은 이재명의 편이다. 앞으로 22대 국회에서 윤 대통령이 ‘백기’를 들지는 않겠지만 참모들이나 관료들이 ‘더 이상 국정 혼란을 노정할 수 없다’며 야당과의 협치를 대통령에게 강하게 요구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총선에서 이미 지도력의 절반을 날려 버렸고, 일부 정치전문가들은 ‘취임과 함께 레임덕’이라는 다소 과한 표현까지 할 정도로 윤 대통령의 절대 파워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정치전문가인 박상훈 전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남은 3년 임기 전망에 대해 “(‘정치하는 대통령’이 잘 안 되는 상황이라면) 대통령은 이제 변수가 못 될 것 같다. 만약 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존재감을 인정 못 받으면 앞으로 그냥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기만 하시라’ 이런 정도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정치하는 대통령’) 전자가 어렵다면 차라리 후자가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대통령이 힘의 한계를 존중하지 않고 현상 타파를 과도하게 시도하면 오히려 부정적인 변화를 용인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와 관련해 항명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가운데)이 지난 3월 21일 서울 용산구 군사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런 점에서 이번 영수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그나마 ‘정치를 하는 대통령’의 길로 들어서는 마지막 입구의 문마저 스스로 닫아버렸다. 윤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에서 ‘총리 지명 협의’ 등을 포함한 거국내각 구성을 선제적으로 제안하고 회담을 주도했다면 그가 진짜 ‘정치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을 받을 수도 있었다. 

윤 대통령이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 그는 이제 민주당의 꽃놀이패 팻감에 불과하다. 이번 영수회담에서 그 팻감에서만은 탈출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았지만 그는 스스로 그 기회를 걷어차버렸다. 그의 의미 없는 자존심과 정치에 대한 무지가 빚은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윤 대통령 앞으로 민주당의 무수한 총선 패배 고지서가 날아올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이번 영수회담에서 그 고지서를 점잖게, 표현도 순화하며 조용히 읽어내려갔지만 앞으로 윤 대통령에게 닥칠 국민의 이름으로 된 ‘피해 보상 청구서’는 정권을 다 걸어도 갚지 못할 수 있다. 

영수회담에서 마지막 ‘회생 카드’를 쓰지 않고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겠다는 우둔함을 드러낸 윤 대통령은, 앞으로도 바뀔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그냥 이재명과 ‘농담’이나 하면서 협치를 하는 시늉만 할 뿐 그렇게 남은 3년도 허송세월로 보낼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대한민국은 멕시코에도 역전당하고(GDP 한국 14위, 멕시코 13위), 2029년에는 인도네시아에도 추월당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를 안 하고 노는 사이에 그 피해는 엉뚱한 경제에서부터 먼저 그 시그널이 오고 있다. 남은 3년은 길지만 ‘그 자리에 있기만 하신다면’ 혹시 모르겠다, 다시 멕시코를 추월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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