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성기노 칼럼] “윤석열 대통령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성기노피처링대표 2024. 4. 2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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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4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용산 대통령실에 때 아닌 마이 웨이(My Way)가 울려 퍼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5개월여만에 물러나는 이관섭 비서실장을 위해 ‘퇴임식’을 마련해준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직원들과 함께 이 실장을 청사 밖 차량까지 배웅하며 애틋한 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은 야권에 190석이 넘는 의석수를 몰아주며 대통령의 일방적인 통치와 독주, 불통을 꾸짖었건만 용산에는 ‘그래도 내 길을 가련다’는 노래가 담장 밖을 넘어 다니니 기괴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하다.

역대 총선 사상 집권여당이 기록적인 대참패를 했건만, 그래서 대통령에게 반대표를 찍은 국민들의 ‘화’를 용산이 어떻게 달래줄 건지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사람들은 당혹함을 넘어 또 다른 종류의 분노와 울화를 느낀다. 부하를 아끼는 ‘정 많은’ 윤 대통령의 소탈함과 ‘츤데레’ 기질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국정은 옳은데 국민이 몰라준’ 선거 때문에 인재를 떠나보내야 하는 대통령의 억울함을 이렇게라도 풀어야 했는지, 그 대범함과 의외성이 놀랍다. 

대통령은 왜 그에게 한때나마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마저 등을 돌리고 무능한 국정운영을 질타했던 국민들의 허망하고 곪은 상처는 ‘쇼’라도 해서 달래주지 못하는가. 대통령은 왜 비서실장 직을 걸고서라도 ‘이렇게 하면 폭망하십니다’라고 충언하지 않았던 그 무능하고 눈치만 보던 참모 하나 잃은 것에 이토록 비통해하는가. 

옛날 같으면 이런 최대 선거의 대참패를 당한 정권이라면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수 없으니 총리를 비롯해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조언했던 비서실장을 당장 경질하는 게 국민들이 애써 찍은 표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아웃’ 수준에 수렴함에도 왜 그렇게 형식적인 사과조차도 이토록 ‘박절’한가.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이관섭 비서실장 퇴임 및 정진석 신임 비서실장 취임 인사 행사에 참석해 정진석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총선에서 그렇게 두드려 맞고도 용산 참모들 또한 하나도 바뀐 게 없다. 지금도 용산 대통령실에는 ‘윤비어천가’가 넘쳐 난다. 홍철호 신임 정무수석은 인선 소감으로 “어제 대통령께서 직접 신임 참모들을 기자들 앞에서 소개해 주시는 모습에 따듯한 분이라 느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따뜻하고 정 많은 것을 모르는 국민들이 있던가. 거대야당과의 협치 최전선에 설 정무수석 입에서 ‘대통령은 따뜻한 분’이라는 손발 오그라드는 아부부터 발화된다면, 도대체 그 협치는 누구를 위한 협치란 말인가. 


‘야당이 저렇게 반대를 해도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국정 파트너’라며 면구스러운 말이라도 앞세워서 등 돌리고 마음 떠난 그들을 국정의 협력 테이블로 끌어올 생각부터 먼저 하지 못하고 자리 준 대통령부터 찾는 정무수석에게는 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지금 국민들은 용산 참모들이 시도 때도 없이 따뜻하고 푸근한 대통령부터 찾을 게 아니라 도탄에 빠져 울분의 표를 찍은 국민들과 대통령 독주에 뒷전으로 밀린 야당부터 찾아 제발 일을 하라고 명령한다. 

비서실장을 떠나보내면서 용산 담장 바깥으로 마이 웨이를 흘려보낼 생각을 한 윤석열 대통령은 앞으로도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정치적인 궁지에 몰렸을 때 그 상황을 ‘일단’ 모면하는 데 도가 튼 사람이다. 지난해 10월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한 뒤 윤 대통령이 ‘국민은 늘 옳다’고 하자 ‘이번에는’ 하며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한 마디로 반성문 쓰는 시늉만 한 뒤 다시 불통과 독주 본성으로 되돌아갔다. 

22대 총선 대참패 뒤에도 곧바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당장 만나자’고 전화하는 순발력을 보여주며 자신에게로 향하는 불부터 일단 끄고 시간을 벌었다. 윤 대통령은 자신에게로만 쏟아지는 선거 폭망 책임론의 더께를 좀 덜어내고 그에게 분노했던 국민들의 화도 누그러뜨리기 위해 ‘나부터 반성하겠다’는 말을 슬쩍 흘리며 겸손의 제스처를 취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홍철호 신임 정무수석을 직접 소개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하지만 윤 대통령이 총선 후 지금까지 보여준 사과와 반성의 태도는 결국 ‘가짜’였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을 대권에까지 밀어 올리는 과정에서 그와 가장 많이 접촉을 한 정치인이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습성’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그는 지난 4월 22일 한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다급해지면 말을 듣는 척 한다”고 말했다.

또한 ‘윤 대통령이 영수회담을 제안하고 바뀌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면서 “대선 때도 질 것 같으면 90도 인사하고 그랬다. 사진도 남아있다. 그런데 대선 끝나니까 그거를 절치부심하고 있다가 바로 쫓아냈다. 어떤 면에선 너무나도 인간적인 분”이라고 비꼬았다. 물론 이준석의 ‘인상비평’이기는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성격과 정치성향, 리더십 스타일까지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증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바뀌지 않았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결정적인 정황은 ‘정진석’의 기용에 있다. “윤 대통령과 동갑내기(1960년생) 친구에다 말이 잘 통하는 ‘편한 사람’이라고 뽑은 것 아니냐”는 일반론적인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정진석을 비서실장에 기용한 것은 윤 대통령이 겉으로는 총선 참패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수그리는 척 하지만 절대 반성하거나 변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걸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인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 경북 울진 출신의 김중권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임명하는 예상외의 인사를 해 수십년을 그 하나 믿고 달려온 ‘동지’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비서실장직은 대통령의 보고 및 결재라인을 총괄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요직 중의 요직이다. 그런 중대한 임무를 동교동계도 아닌, 한때 ‘정적’이었던 민정당 출신 인사로 뽑았으니 당시로서는 파격 중의 파격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3년 6월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8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사진 기자단)

 


김중권 당시 비서실장은 과거 민정당 간판으로 세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정무수석비서관을 역임한 5, 6공의 대표적 인사였다. 지금으로 치면 윤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밑에서 청와대 비서관 등의 참모직을 오랫동안 맡았던 이광재나 안희정 정도의 인사를 비서실장에 임명하는 것과 같다. 

당시 김중권의 비서실장 기용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동서화합 차원의 지역 차별 철폐와 능력과 전문성을 감안한 인사 원칙을 선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초대 비서실장 인사를 통해 진보정권의 국정운영 방향과 동서화합의 뚜렷한 콘셉트를 표방했던 것이다. 김대중이 윤석열보다 정치를 몰라서 김중권이라는 ‘이방인’을 권력의 2인자 자리에 앉혔을까.

그런데 윤 대통령이 고른 비서실장 정진석은 김중권과 비교했을 때 어떤 콘셉트와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정진석의 정무적 능력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는 지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여야에서 모두 ‘문제가 있는’ 인물로 낙인찍힌 사람이다. 

야당과의 협치는 상대를 존중하고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노무현’은 현재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이자 뿌리다. 그런 상징적 인물을 근거 없이 폄하하고 비방해 실형까지 선고받은 사람이 윤석열 정치의 협치 대리인이자 기획자로 내세웠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평소 내각제 신봉자로 공공연히 떠들고 다닌 정진석 실장의 과거 이력으로 볼 때 윤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여소야대의 궁색한 상황을 또 다시 얼렁뚱땅 모면해보려는 술책을 구사중이라는 게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다. 

보수층 일각에서도 ‘윤 대통령이 내각제 개헌으로 내치를 여야 정치인들에게 넘겨준 뒤 자신은 국방외교 등을 총괄하는 대통령직에 머무르며 퇴임 후 안전판을 모색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윤 대통령이 정진석 실장과 비교적 말이 잘 통하는 박지원 이재오 등의 ‘올드보이’들을 엮어 내각제 개헌을 띄울 시나리오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말들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프랑스와 베트남 방문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2023년 6월 24일 오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참패 뒤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김건희 여사’뿐이다. 물론 부부의 정으로 그를 사랑해서 ‘보호’해주려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박영선 국무총리, 양정철 비서실장’설의 진원지로 김 여사 측근 대통령실 인사들이 어른거리는 것은 여전히 여권의 최고 실세가 ‘김건희’라는 점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이 누군가를 위해 몸을 던져야하는 ‘당위’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여기에다 뜬금없이 법률수석실(가칭)을 신설하려는 것도 ‘김건희 사법리스크’ 방어에 국정의 총역량을 투입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에 비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총선 압승 뒤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사법리스크’ 뇌관의 제거다. 이제 대권승리의 8부능선까지 오른 이 대표에게 사법리스크만 제거되면 더 이상 거칠 것이 없다. 이 대표가 윤 대통령과 마주 앉는다면 가장 먼저 자신의 사법리스크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 정도와 ‘김건희’와 자신의 사법리스크 ‘빅딜’ 가능성에 대해 탐색을 할 것이다. 

최근 이 대표는 총선 전 분위기와 달리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숨 고르기를 하는 양상이다.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도 일단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 특검법’과 25만원 전 국민 지급 의제 정도만 관철시킬 예정이다. 향후 정국은 윤석열 대통령의 ‘김건희’와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라는 최대 위험 뇌관이 어떻게 제거되며 빅딜의 종착역에 도달할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참패 뒤 지금까지 보여준 ‘상황 일시모면’ 행보를 볼 때 지금 그가 총선 폭망의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고는 있는지 깊은 회의감이 든다. 이 말은 그의 ‘본성’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과 맞닿아 있다. 이 절망감은 윤 대통령이 총선 참패를 당한 이후 내보인 후안무치하고 무책임한 행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총선 참패 뒤 내보인 수습 과정이나 위기관리 능력은 역대 최악이다. 그리고 ‘이제는 정치를 하겠다’며 정진석이라는 야당 협치 미션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서실장을 앞세워 내각제 개헌 등의 상황모면 탈출 루트를 열심히 찾고 있다. 남은 3년 딴 생각하지 말고 진심으로 국정운영에만 매진하는 대통령으로 남아야 그나마 ‘퇴출’의 지뢰밭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데도 그에게는 그런 ‘독도법’이 없다는 게 우리 정치의 불행이다. 3년은 길고 권력은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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