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 칼럼] 총선 압승에도 이재명은 웃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압승하자 이재명 대표가 2027년 대통령선거(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3월 3일 실시 예정) 승리의 8부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0.73%p차로 석패한 이 대표는 이번 총선 리턴매치에서 5.4%p차(더불어민주당 득표율 50.5%, 국민의힘 45.1%)로 보란 듯이 설욕전을 펼쳤다.
어찌 보면 대선은 이 대표 혼자 패배의 쓰라림을 삼켜야 하는 고독의 레이스였지만, 이번 총선은 175명 당선인들의 승리를 견인했다는 점에서 그 기쁨은 배가되었고 ‘사법리스크’로 구겨졌던 야당 대표의 체면도 한껏 살렸다. 이는 곧 이 대표의 2027년 대선 재도전의 길을 아무런 의심 없이 열어젖혔다는 점에서, 21대 국회 최대 걸림돌이었던 ‘딴죽덩어리’ 비주류들을 전부 치워버렸다는 점에서 그의 야당 장악력이 민주당 60년 역사 이래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특히 이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셧아웃 시키며 향후 대권가도에서 실질적인 ‘원톱’의 지위를 확실히 다졌다. 이제 민주당에서 ‘이재명’의 득표 경쟁력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의원들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민주당의 총선 압승이 이재명의 승리가 아니라 ‘무능한 윤석열과 어설픈 한동훈의 합작에 따른 참패’라고 규정하며 이 대표의 ‘전공’을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가 윤 대통령이 맘먹고 반질반질 닦아준 대권직행의 신작로에 폼나게 들어선 것만은 사실이다.
윤 대통령이 총선 전 이종섭 전 호주대사 ‘빼돌리기’, 역대 최악의 ‘뜬금포’ 대국민담화, 영혼 없는 민생토론회 개최 등의 헛발질로 총선 레이스 맨 앞에서 이 대표 승리에 결정적 공을 세웠기에 이재명의 운은 억세게, 억세게 좋았다. 앞으로 이 대표는 이번 총선처럼 2027년 대선에서 딱 한 번의 행운이 더 찾아와준다면 대통령 권좌는 떼 논 당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4.10 총선 당일 6시 출구조사 발표에서 민주당 압승이 발표되었는데도 이재명 대표는 웃지 않았다. 옆의 김부겸 공동선대위원장이 환하게 웃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이 대표의 얼굴은 더 굳어지는 듯했다. 총선 과정에서 특유의 ‘깨방정 막말’로 몇 번 데인 전력 때문인지, 아니면 손뼉 치고 환호할 일을 최대한 표정관리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윤 대통령이 저질러 놓은 온갖 ‘국정 비정상의 지뢰밭’을 복구하려니 앞이 캄캄했던지, 어쨌든 이 대표는 웃지 않았다.
때로는 사진 한 장이나 찰나의 표정이 정치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4.10 총선 당일 민주당이 북 치고 장구 치고 환호작약해야 할 일에 대해 이재명 대표는 그 기쁨의 세리머니를 최대한 억제하고 바윗돌처럼 단단하고 무거운 냉정함을 유지했다. 왜 그랬을까. 이 대표 본인만 알겠지만 ‘이 한 장의 사진’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여러 가지 해석의 갈래가 퍼져나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압승의 기쁨도 잠시 앞으로 본격적으로 닥칠, 어찌 보면 ‘영어의 몸’이 되거나, 아니면 2027년 대선 출마 자체가 봉쇄당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을 지배한 것이 환호의 몸짓을 주저하게 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사실 이 대표에게 총선 승리는 짭짤한 현찰이었지만 향후 재판은 부도가 예상되는 약속어음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사법리스크’는 이 대표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다. 자칫 다 잡은 2027년 대권을 목전에 두고 ‘사법리스크’의 분루를 삼켜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중압감과 위기감이 이 대표의 총선 압승 기쁨을 절반 정도는 앗아갔으리라는 추론은 상식적이다.
현재 이 대표가 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은 총 3개다. 지난 2022년 9월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에서 시작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상당 부분 심리가 진행된 상태다. 이 밖에 형사33부에서 진행 중인 배임.제3자 뇌물 등 사건은 절반 정도 진행중이고 같은 부에서 진행 중인 위증교사 사건은 지난해 말 기소돼 시작중에 있다.
이 대표는 3개의 재판 중 특히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현재 가장 ‘위험한’ 상태다. 공직선거법 사건에서 100만원 이상 벌금형을 받으면 5년간,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경우 10년간, 징역형을 받을 경우 집행 종료 이후 10년간 피선거권을 잃어 출마할 수 없다. 당연히 투표도 할 수 없다.
상당 부분 심리가 진행된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1심 재판이 올해나 내년 중으로 마무리되면 늦어도 그 다음해인 2026년에는 대법원 결론까지 나올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선거법 재판은 1심 선고 6개월 이내, 2심과 3심은 각 3개월 이내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 재판에서 100만원 이상 벌금형만 확정되더라도 의원직을 잃고 5년간 출마 및 투표를 할 수 없게 된다. 2027년 21대 대선과 2028년 총선 출마도 불투명해지게 된다.
제3자뇌물혐의가 포함된 성남FC 사건이나 배임이 포함된 대장동.위례 개발 의혹 사건 재판은 공직선거법 사건보다는 길게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선거법과 달리 심리 기간에 제한이 없어 대법원 결론이 나기까지 몇 년이 더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경미하더라도 유죄가 내려지면 2027년 대선 출마는 물 건너 간다. 만약 이 대표가 ‘다행히’ 100만원 이상 벌금형을 받아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면 2027년 대선이 아니라 2032년 22대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 대표의 현재 나이가 60세(1960년생)이니 68세에 2032년 대선 도전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1년 첫 번째 대선에 도전한 뒤 구국선언 주모죄, 내란음모죄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형과 심지어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극적으로 사면복권돼 대선 도전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이 1987년 최종적으로 사면복권을 받아 그 후 ‘자유롭게’ 대선에 나설 수 있었을 때, 그의 나이 63세였다. 김대중은 그로부터 10여년이 더 지난 1997년, 73세의 나이로 비로소 대통령이 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찌 보면 ‘정치범’의 전형이었다. 죄목이 모두 ‘국가 반란’ 관련이었다. 이는 권력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들이대는 가장 흔하고 효율적인 ‘칼’이다. 그렇게 김대중은 첫 번째 대권 도전 이후 16년의 세월 동안 박정희 독재정권의 ‘사법리스크 올가미’에서 허송세월을 보내야 했다.
김대중과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를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의 경우 ‘정치범’이 아니라 공직선거법 위반이나 제3자 뇌물죄 등의 일반 형사사건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이 대표의 ‘정치생명’을 틀어쥐고 있는 현재의 사법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핍박받았던 ‘사법리스크’와 이재명 대표가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3개의 재판 ‘사법리스크’를 법리의 등가에 놓고 판단할지 의문이라는 주장도 한다.
김대중이 ‘국가 반란’ 관련 재판을 받을 때는 사법부가 박정희 독재정권의 손아귀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의도적인 유죄’ 판결을 감내해야만 했다. 하지만 현재의 사법부는 박정희 독재정권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독립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특정인맥과의 친분 여부, 영움심리, 주변의 부추김, 심지어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도 판결이 하늘과 땅 차이로 어긋날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라를 이끌어갈 가능성이 있는 야당 대표의 정치생명을 한 법관의 법률적 양심과 증거를 보는 매의 눈에 의지하기에는 현재 사법부의 ‘독립성’과 ‘객관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신뢰도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법원발 정계개편’이라는 말까지 회자될 정도로 ‘사법의 정치화’가 논란이다.
지난 2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도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법정구속을 시키지 않고 풀어준 것은 22대 총선 민주당 압승의 ‘나비효과’가 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대법원 재판을 앞두고 현재 법조계에서는 조 대표와 특정 대법관의 ‘친분’ 의혹이 제기돼 재판이 지체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 심판과 조국 대표에 대한 ‘비법률적 방식의 명예회복’이 국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은 것을 감안하면 사법부도 이런 민심의 기류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 대표의 재판에도 22대 총선의 민의가 사법부의 판결에 ‘반영’되거나 영향을 끼칠 개연성도 있다.
지난해 이 대표가 구속적부심에서 유창훈 판사로부터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불구속 재판 판결을 받은 점을 감안하면 다가올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서도 ‘제2의 이재명 구사일생’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 법조계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3개 재판에 대해 어느 하나라도 유죄가 나올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아니면 대법원 판결 확정 뒤 2027년 대선 전에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사면복권을 받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어느 것 하나 이 대표에게 긍정적인 시그널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게 현재 이재명 고뇌의 본질이 녹아 있다.
어쨌든 우리 정치는 한 법관의, 한 재판의 결과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양상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사법부의 ‘정치적’ 판결에 따라 현재의 여의도 정치판은 ‘모 아니면 도’의 상반된 결과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사법의 정치화’의 부정적 측면은 논외로 하더라도 법관의 양심과 객관성, 독립성에 정치인들이 그들의 운명을 오롯이 맡기기에 우리 사법부의 신뢰자본은 아직도 허약하다.
사실 이 대표가 향후의 재판에서 사법리스크를 벗어날 뾰족한 방법은 없다. 어떤 정치 성향의 법관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마음까지도 움직일 정도의 정직함과 성실성, 그리고 정치활동에서도 천심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이후 어떤 재판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것을 ‘정치적으로’ 깨끗하게 수용해 3권분립과 법치주의에 대한 존중심과 승복의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완결된 길을 닦는 데 이재명도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천심도 민심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