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은 ‘김기현의 백기사’가 될 것인가
국민의힘 당권 구도가 ‘안철수 변수’로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급등하면서 김기현 후보는 비상이 걸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안 후보를 ‘때리며’ 지원사격을 해주고 있지만 ‘당무 개입’이라는 한계 때문에 여의치 않다. 이에 김기현 후보는 적극적인 ‘연대’를 통해 1위를 재탈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기현 후보의 러브콜 1순위는 나경원 전 의원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김 후보의 경쟁자인 안철수 후보가 나 전 의원의 지지층을 흡수하면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양측이 박빙의 승부를 보이면서 ‘나경원 변수’도 여기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나 전 의원이 전통 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원 100% 투표인 전당대회에서도 나름대로의 소구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안철수 후보의 추격에 몸이 단 김기현 후보는 지난 3일 나 전 의원의 자택을 방문한 데 이어 지난 5일에는 강릉으로 가족여행을 떠난 나 전 의원을 직접 찾아갔다. 전당대회 준비로 바쁜 김 후보가 2번이나 나 전 의원을 직접 찾아가 지지를 읍소한 것이다. 김 후보는 나 전 의원에게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강조하며 ‘원팀’을 거듭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의 제안에 나 전 의원은 혼자 웃음을 흘릴 만하다. ‘친윤계’의 거센 공격에 당권 도전마저 포기해 정치생명도 위태로워졌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김기현 후보의 ‘러브콜’에 기사회생할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게 됐다. 전당대회 승부가 김기현-안철수의 박빙 승부로 바뀌면서 ‘나경원의 1표’가 상당히 중요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 전 의원도 바로 이런 ‘뒷공간’을 노리고 중도포기를 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 전 의원은 전당대회 도전을 포기하면서 끝까지 ‘윤석열 정권의 성공을 빈다’며 현재권력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 일각에서는 ‘중도 사퇴의 조건으로 내년 총선 공천 내락을 받았다’는 설도 나왔다. 이렇듯 나 전 의원이 전당대회 중도포기를 하면서 향후 ‘친윤계와의 동행’을 밑자락으로 깔아놓았기 때문에 이번 김기현 후보의 ‘원팀’ 제안에도 응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당시 후보) 수행실장을 지내는 등 친윤 핵심 인사인 이용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김기현 의원이 나 전 의원을 연일 찾아가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같이 가자는 의미다. 나 전 의원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김행 비대위원 역시 “나 전 의원의 표는 이미 김기현 안철수 천하람 등으로 다 흩어졌다. 김 의원이 (나 전 의원을 향해)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결국 나 전 의원이 김 의원을 도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친윤계’들은 나 전 의원의 ‘김기현 백기사’를 기정사실화 하며 은근히 ‘외곽 압력’을 넣고 있다. 이와 함께 친윤계 성향의 초선 의원들은 ‘나경원 비난’ 성명서 발표에 대한 ‘출구전략’도 모색하고 있다. 나 전 의원이 김기현 후보를 도와줄 명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초선들이 ‘연판장 사태’에 대해 사과를 한 것이다.
친윤계 초선 의원 10명은 6일 나경원 전 의원을 만나 ‘초선 연판장’ 사태에 대해 위로의 말을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친윤 핵심으로 분류되는 박성민 이용 의원을 비롯해 강민국 박대수 이인선 전봉민 정동만 최춘식 의원 등은 6일 오후 1시 서울 동작을 당협위원회 사무실에서 나 전 의원과 면담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초선 의원들은 ‘연판장’과 관련해 나 전 의원에게 이해와 위로의 뜻을 전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당의 발전을 위해 함께 가자는 취지의 말도 했다”고 한다. 또한 나 전 의원에게 김기현 후보 지지에 적극 동참해달라는 뜻도 함께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나 전 의원의 ‘변신 가능성’은 여의도 정치에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제압당해 꼬리를 내린 것도 모자라 그 권력에 다시 기생해보려는 4선 중진의 얄팍한 행보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어차피 ‘나경원 정치’라는 게 강자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가 이길 만한 사람에게 붙어서 권력을 연장해온 것이기 때문에 한때 ‘적’이었던 김기현 후보의 손을 잡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고 말했다.
친윤계 초선 의원들이 나경원 전 의원을 찾아가 자신들이 쓴 연판장에 대해 ‘사과’를 하는 장면도 초선의 순수성과 소신을 저버린 굴욕적인 장면으로 비쳐진다. 그들이 연판장에서 “대통령과 참모를 갈라 치면서 당내 갈등을 부추기고, 그 갈등을 자신의 전당대회 출마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건 20년 가까이 당에 몸담은 선배 정치인의 모습이라고 믿기 어렵다”며 나 전 의원을 맹비난했을 때 정치권에서는 “초선들이 ‘공천’을 따내기 위해 권력에 아부를 행태”라는 비판도 나왔다.
그런데 초선 의원들은 6일 나 전 의원을 찾아가 연판장에 대해 사과를 함으로써 자신들 성명서의 순수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또 다른 권력 아부 행보를 보여주었다. 나 전 의원에게 자신들의 연판장이 잘못 된 것이라고 사과하며 기존 입장을 번복하는 것은 그 성명서가 정치적 소신에 따른 결정이 아닌 권력의 편을 들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이래저래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단 한 번도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지 못하고 제압과 굴종의 ‘정글 법칙’만 확인시켜 주는 ‘씁쓸한 파티’가 돼가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2월 6일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