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비 폭탄’, 민심 이반 심상찮다
‘난방비 폭탄’으로 윤석열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난방비 폭탄 정국이 심각한 양상으로 흘러가자 난방비 지원을 위한 국무회의도 하루 앞당겨 열 만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통령과 참모들 간의 ‘조율’되지 않은 지원 대책도 나와 대통령실의 위기관리 능력이 다시 한번 도마에 오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비상경제민생회의’를 12차례나 주재할 만큼 서민들의 경제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 왔고 또한 회의를 실시간 생중계하라는 파격적인 지시를 하며 국민들과의 공감대를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이번에도 서민들이 난방비 폭등의 직격탄을 맞자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태해결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참모들과 충분한 협의와 사전조율 없이 혼자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난방비 폭등이 사회 이슈로 급부상하자 26일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의 첫 브리핑에 이어 ‘공식대책’을 직접 지시한 장본인이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30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중산층과 서민의 난방비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브리핑에서 밝혔다.
이는 윤 대통령이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을 위한 1000억원 규모의 예비비 지출을 즉시 재가한 것과 함께 지원 대상을 중산층까지 넓힐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하지만 최상목 경제수석은 다음날 윤 대통령의 지시와 다소 ‘배치’되는 대책을 내놓았다. 최 수석은 “난방비 급등 사태와 관련해 정부 지원 대상을 차상위 계층까지 넓힐 예정”이라고 31일 밝혔다. 최 수석은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중산층을 포함해” 난방비 부담 경감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선에서 한발 물러나 ‘차상위 계층’으로 그 범위를 ‘축소’해 발표를 한 것이다.
최 수석은 이후 윤 대통령이 지시한 중산층 대상 확대와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서면 브리핑에서 “중산층에 대해서도 관계부처에서 현황을 점검하고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추가로 해명했다. 이렇게 대통령과 참모들 사이에 난방비 지원 기준을 놓고 ‘중산층’과 ‘차상위 계층’으로 차이를 보이는 속사정은 물론 ‘돈’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한턱 쏘는 마음으로 ‘중산층까지 지원’이라고 외쳤지만 나라 곳간은 대통령의 호탕함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일단 대통령실이 최초로 밝힌 취약계층 117만 가구 지원에 들어가는 긴급지원금만 1천8백억 원이다. 하지만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는 소득 하위 80%까지 지원한다면, 그것에 10배가 훨씬 넘는 돈이 필요하다. 아무리 머리 좋은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예산의 빈틈을 짜내고 짜낸다 해도 기존예산에서 수조원이 드는 돈을 당장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추경이 필요하다.
난방비 폭탄으로 윤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는 이재명 대표는 지난 26일 ‘난방비 폭탄 민주당 지방정부·의회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7조2000억원 규모의 ‘에너지·물가 지원금’과 추경을 제안했다. 이재명 안은 소득 상위 20%를 제외하고 전체 80%에게 지원금 성격으로 7조2000억원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야당의 ‘억지 주장’이라고 치부하더라도 국민의힘에서도 파격적인 지원 제안이 나오고 있다.
당권주자인 조경태 의원은 전 가구에 3개월간 10만원씩 지급하자고 주장한다. 전국 전체 2144만 가구에 이같은 방식으로 모두 30만원씩 지급하면 산술적으로 총 6조4320억원이 소요된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파격적인 난방비 지원 요구가 나오면서 윤 대통령의 ‘중산층 지원’마저도 지금 단계에선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처지에 놓였다. 윤석열 정부가 난방비 지원 방안을 보다 과감하고 선제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이 추경을 남발해 국가 재정을 축낸 ‘악의 축’으로까지 규정하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추경 요구도 포퓰리즘이라고 일축하며 무시하곤 했는데 이번 난방비 폭등 사태에서 윤 대통령은 자신이 그토록 경원시하는 ‘추경’ 없이는 ‘서민’들의 고통을 제대로 해결해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정권이 무조건 이전 정권이 시도했던 정책은 피하고 무시하는 전략인 ‘Anythig But Moon(문재인만 아니면 돼) 증후군’에 빠져 효율적인 정책을 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무인기 도발 사태나 난방비 폭탄 등 국가적 주요이슈가 터질 때마다 ‘문재인 정권’의 ‘비정상적 정책’에 눈길을 돌리며 ‘남 탓’을 하는 경향을 보였다.
현재로서는 난방비 폭탄 정국으로 들끓는 민심을 잠재우고 서민의 급박해진 민생고를 잠시 진정시켜줄 유일한 수단은 추경을 통한 긴급지원뿐인데 윤 대통령과 경제참모들은 마음만 ‘중산층 지원’으로 앞서갈 뿐 실질적인 대책 마련 앞에서는 주춤하는 모습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윤 대통령의 ‘중산층 지원’ 지시와 최상목 경제수석의 ‘차상위층 지원’ 발표의 ‘엇박자’로 나타난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난방비 폭탄이 윤석열 정권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국민 여론은 이번 ‘난방비 폭탄’이 안보 이슈(북한 무인기 대응)나 여권 내부 갈등(나경원 사퇴 과정)보다 대통령 평가에 더 박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난방비 폭탄 사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비단 난방비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영업자나 직장인 가릴 것 없이 ‘피폐해진’ 물가고의 민생 경제를 절감하고 있다. 에너지 환경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가 위기에 처해 있고 작금의 물가고도 단 기간 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이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문재인 정권의 코로나19 긴급 지원 대책과 추경 추진 등을 ‘검증된 정책’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이 위기를 넘겨야 할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또한 정치권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권이 출범할 때부터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물가고와 고금리 문제가 심각했었는데 그동안 정부는 뭐하고 있다가 겨울철 난방비가 폭등하자 본질적인 대책 수립 없이 면피용 정책만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서민이 체감하는 ‘민생고’가 임계점을 넘어 폭발지경에 이르러서야 윤석열 정부가 충분한 검토 없이 부랴부랴 피상적인 정책을 남발하는 ‘뒷북 행정’으로는 급변하는 물가고 시대의 서민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쏟아지고 있다.
이번 난방비 폭탄 사태는 단순히 연료비에 얽힌 일시적인 민심 이반 현상이 아니다. 그동안 억눌려져 왔던 민생경제의 피폐함을 체감한 국민들이 정부의 근본적 대책을 강하게 요구하는 원성의 목소리가 그 본질이다. 실제로 20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정치 커뮤니티 플랫폼 옥소폴리틱스가 ‘정부가 난방비를 지원해야 할까요’라는 주제로 설문조사한 결과(응답자 540명) 50%의 국민이 ‘지원해야 한다’고 답했다. 주로 진보성향 응답자가 찬성을 했지만 국민의 절반이 ‘난방비 지원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긴급 지원을 원한다는 여론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삶의 질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국민들이 경각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민심의 ‘거부반응’을 윤 대통령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문재인 정권이 종부세 폭탄으로 국민들이 등을 돌린 것처럼 윤석열 정권도 ‘난방비 폭탄’으로 민심이 등을 돌릴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정치전문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ABM(Anything But Moon) 도그마’에 계속 빠져 있는 이상 앞으로도 효율적인 국가운영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재인 정부 정책의 특장점을 살리고 계승하지 않으면 앞으로 제 2, 제 3의 난방비 폭탄 사태가 이어질 것이다.
(파이낸셜투데이 2월 2일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