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윤석열 대통령의 크리스마스 기도

성기노피처링대표 2022. 12. 2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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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김건희 여사가 24일 서울 중구 약현성당에서 열린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에 참석해 기도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2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이맘때쯤이면 후다닥 지나가 버린 1년을 후회하는 마음과 다가올 새해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곤 합니다. 그렇게 2022년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올해는 왠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뭔가를 놓고 온 듯, 누군가를 남겨두고 온 듯,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마음 한 켠이 시커먼 먹으로 얼룩진 것 같아 닦아내려 해도 잘 닦이지 않습니다. 가을밤 길을 걷다가 황망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쓰라린 것은 그가 나일 수도 있다는 우연의 현실감 때문입니다. 158명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책임 있는 자들의 사과와 반성이 없다는 사실에 울분이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연말연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동정 뉴스가 흘러나옵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24일 은퇴 안내견 한 마리를 더 입양했다는 소식입니다. 대통령 부부가 입양견 ‘새롬이’를 안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정겹고 소탈해 보입니다. 반려동물 인구 1000만명 시대에 동물을 사랑하는 ‘서민적인 부부’ 모습은 연말연시 그 어떤 대통령 메시지보다 강렬하고 인상 깊습니다. 가장 강한 권력자임에도 한 마리의 강아지를 입양하는 그 소박한 모습에서 ‘약자’를 보호하고 지켜주려는 ‘정의의 대통령’ 모습이 투사돼 나오는 것 같습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저녁에는 서울 중구 약현성당에서 열린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에, 25일에는 윤 대통령이 어린 시절 다녔던 성북구 영암교회를 찾았습니다. 이렇게 연말에 윤 대통령 부부는 ‘약자’에 대한 사랑과 국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사적으로’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이 2개의 훈훈한 장면이 왠지 기괴하게도 다가옵니다. 윤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그는 마치 ‘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가진 지도자로 비치기도 합니다. 올해를 넘기면서 우리 사회에 가장 큰 고통을 안겨준 사건은 이태원 참사였습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158명의 희생자 유가족과 철벽을 치고 소통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이후 보여준 ‘통치행위’는 국민들이 느끼는 국가 최고 권력자의 책임 있는 자세와 반성의 태도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이태원 참사 책임자 중 한 명인 ‘고교 후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등을 다독거려 주고 공개석상에서 일으켜 세워 발언을 하게 하는 등 오히려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은 오로지 ‘대깨윤’(대가리가 깨져도 윤석열의 준말로 ‘윤석열’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대깨문’을 패러디해 등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대통령의 ‘지지층 편식증’을 떠오르게 합니다. 지난 12월 16일 오후 6시 이태원 참사 49재 시민 추모제가 열렸던 그 시간에 윤 대통령 부부는 서울 지하철 안국역에서 열린 중소·소상공인 판촉행사에 참가해 크리스마스 트리에 점등을 하고 술잔을 샀습니다. 윤 대통령은 “술 좋아한다고 술잔 샀다고 그러겠네”라고 농담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극단적인 정치화에 대해 반감을 드러낸 ‘대깨윤’들에게 보낸 윤 대통령의 암묵적인 지지의 메시지는 참사 49재 날에도 일상을 유지한다는 ‘언론 플레이’로 생생하게 전달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4일 경기도 용인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에서 리트리버 강아지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김미나 국민의힘 창원시의원은 버젓이 “#우려먹기 장인들 #자식 팔아 장사한단 소리 나온다 #제2의 세월호냐 #나라 구하다 죽었냐”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출범한 지난 10일 권성동 의원은 “이태원이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상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회의석상에서 “지난 세월호 사태에서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국가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 이를 숙주로 삼아 기생하는 ‘참사 영업상’이 활개 치는 비극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이들은 참사가 생업입니다. 진상이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태원 시민대책회의 또한 참여단체 면면을 보니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가슴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에 예고도 없이 들러 유가족의 항의를 뻔히 예상한 듯 사진만 찍어 ‘증거’를 남긴 뒤 5분도 안 돼 교통법규까지 위반하며 사라져 버렸습니다. 158명의 죽음은 누구에게는 ‘시체팔이’로, 누구에게는 정쟁의 도구로, 또 누구에게는 ‘면피’의 도구로, 또 어떤 지도자에게는 지지층을 ‘단도리’하는 도구로 전락하며 아직도 용산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의 슬픔과 분노 표출은 정부를 향한 시위대의 데모질로 매도되고, 유가족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요구는 ‘대통령 탄핵 장전’의 ‘노리쇠’로 의심받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치화’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복사판이 되면 안 되겠다는 뜻이겠지요. 진상규명을 7년 동안 하면서 막대한 세금이 들어갔지만 사고의 원인은 끝내 바닷속에 묻히게 한 책임을 유가족의 ‘무한 정치공세’로 돌리는 듯한 인식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까지 영향을 준 세월호 참사였기에 이태원 참사가 윤 대통령의 ‘안위’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시민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을 향한 노골적인 조롱과 비난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어도 대통령은 침묵으로 악행자들의 패륜적 행위를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9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았다가 유족들 항의로 자리를 뜨며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는 도로를 건너는 모습. (사진=시사IN 영상 캡처)



‘진영의 곤봉’으로 무장한 ‘대깨윤’들은 유가족들의 슬픔을 정치화하고 희화화하면서 이태원 참사의 본질에 분탕질을 하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을 이간질시키고 진상규명 요구를 반정부 활동으로 몰아세웁니다. 가족의 죽음을 슬퍼하는 인간의 본능마저도 진영의 논리로 코드화하고 정치적 이득을 보려 합니다. 그런 악랄하고 비열한 행위에 윤 대통령은 눈감고 귀를 닫고 있습니다.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모두 유가족들이 요구했던 것은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수립입니다. 하지만 158명의 어이없는 죽음은 더 거센 정치화의 물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그 책임을 지려는 최소한의 양심적 행위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국회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본 유가족들이 그를 향해 ‘보고도 왜 모른 척 하느냐’며 울부짖는 장면이 정부의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의도적인 회피와 외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정부와 집권여당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생떼를 쓰는 대화 불능의 이기적인 집단으로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를 정치적인 색안경을 끼고 대하는 윤 대통령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대깨윤’들의 유가족 공격 행위도 계속될 것입니다.


 

‘내 편’만 챙기는 정치는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치는 갈등 해결의 출발점이자 국민 통합의 시작점이어야 합니다. 윤 대통령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책무가 바로 국민통합임에도 취임식에서는 자유를 35번 외치는 사이에 통합과 소통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내식대로’ 자유를 추구하겠다는 일방독주의 의지만이 선연하게 보입니다. 국민통합은 국민을 획일적으로 하나로 묶는 것이 아닙니다.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고 평화적이고 공정한 방식으로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다원화된 과정입니다(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협치는 그 국민통합을 실현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가치 있는 수단입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로 우리는 죽음마저도 ‘니편’과 ‘내편’으로 갈라져 정치적인 애도를 하고 있습니다. 증오와 배제의 2차 가해는 유가족들이 마음 놓고 슬퍼할 자유마저 유린하고 있습니다. 

불과 두 달여 전 한꺼번에 158명의 사람들이 숨이 막혀 죽었는데 윤 대통령 부부는 태연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입양한 강아지를 안고 기뻐하고, 교회와 성당에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며 기도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의 연말 메시지 가운데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이번에 보여준 사랑과 박애의 ‘사진’들만큼 이질적이고 낯설게 느껴지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냥 ‘쇼’라고 해도 좋으니, 2022년이 가기 전에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차디찬 손을 단 한 번만이라도 잡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2022년 달력의 끝장을 넘기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이 있음을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여성경제신문 12월 27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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