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시스템이 무너지는 윤석열 정권
이태원 참사 희생자가 한 명 더 늘어 158명이 됐습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지난 13일 오후 순천향대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20대 내국인 여성 A씨가 숨졌다고 밝혔습니다. 아직도 중상자가 31명이나 더 있습니다. 사상 유례없는 참극입니다. 하지만 이 참혹한 사건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책임소재가 규명되겠지만 그 전에 큰 상처를 입은 민심을 먼저 치유해줄 ‘정신적인 책임’을 지는 정부 인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찰국과 영빈관 등의 예산안을 전액 삭감하는 등 윤석열 정권에 대한 분노에 찬 저항을 준비 중입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불통의 국정운영을 철회할 의사가 없어 보입니다.
현재 윤석열 정권의 공적인 국정 시스템이 무력화되는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도대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은혜 홍보수석의 ‘웃기고 있네’ 메모 파문은 여권의 무너진 공적 시스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국회와 대야 관계를 전담하는 정무수석이 사태 수습을 해서 여야의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함에도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이 논란에 불을 질러 정국은 더욱 꼬이게 됐습니다. 지난 8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실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김 수석이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노트에 ‘웃기고 있네’라고 적어 필담을 나누는 게 들통이 난 사건에 대한 여권의 ‘수습’은 정무대응 시스템이 고장 난 일종의 ‘사고’였습니다.
사실 김은혜 수석의 ‘웃기고 있네’ 메모 파문은 ‘평상시’라면 어느 정도 용인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해프닝이었습니다. 지금 민주당도 집권여당일 때 야당의 질의에 대해 무시하고 조롱하는 태도를 수도 없이 보였고 강기정 정무수석은 고성을 지르는 등 감정적인 대응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메모 논란이 터진 운영위의 주 이슈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대통령실의 책임소재를 묻는 자리였습니다. 책임회피가 뻔히 예상되면서도 야당은 158명의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의 울분을 대신해 고통스러운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통령실의 상징적인 반응은 ‘웃기고 있네’가 돼 버렸습니다. 이튿날 김 수석이 “운영위에 집중 못 한 데에 반성한다”며 눈물로 사과를 했지만 그 기사에 가장 많이 달린 댓글은 ‘웃기고 있네’였습니다. 그게 민심이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아니면 여당의 권력구도에 반기를 들 속셈이었는지 모르지만 다행히 주호영 운영위원장이 두 수석을 퇴장시키며 가까스로 수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끝나가던 메모 논란에 난데없이 윤석열 대통령이 튀어나와 어물쩍 끝나가던 사태는 다시 진흙탕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윤 대통령은 ‘웃기고 있네’ 필담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김은혜 홍보수석 경질론에 대해 “국회에 출석한 정부위원들 관련(해서도) 많은 일들이 있지 않았나. 종합적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별 것 아닌데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능청스러운 답변은 ‘대통령 참모의 사소한 실수가 있었다’며 최소한의 유감 표명 정도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나 이태원 참사에 슬퍼하는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이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전화해 두 수석의 퇴장 조치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책임론에 불만을 보이면서 ‘의원들이 맥아리가 없다’고 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습니다. 장제원 의원이 ‘가짜 뉴스’라고 일축했지만 윤 대통령의 ‘본심’은 국민의힘 의총장에서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윤 대통령의 대선후보와 인수위 시절 때 수행팀장이었던 이용 의원(비례대표)은 의총 때 “여당이 윤석열 정부 뒷받침도 못 하고 장관도 지켜주지 못하느냐. 운영위에서 강승규·김은혜 수석을 왜 퇴장시키냐. 문재인 정부 때 강기정 정무수석은 운영위에서 더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윤 대통령의 ‘지시’ 없이는 초선으로서 불가능한 집권여당 전체에 대한 ‘항명 사태’입니다. 대통령의 위세를 이용해 의회정치를 한 순간에 ‘봉숭아 학당’으로 전락시킨 장본인은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었고 이 과정에서 국정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불만 표출은 하지 않았지만 대통령의 ‘한 마디’에 여당 전체가 굴복해야만 하는, 당의 비참한 처지를 한탄하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장제원 의원 같은 원조 ‘윤핵관’들이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며 몸을 사리는 여당의원들을 비판하는 충성경쟁만이 여당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김은혜 수석의 ‘경거망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질책하는 상징적인 ‘징계’를 내리지 않고 도리어 단 한 명의 참모를 보호하기 위해 집권여당 전체를 ‘비겁한 집단’으로 규정지어 버렸습니다. 윤 대통령의 어긋난 ‘부하 사랑’은 이태원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 당사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서도 표출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 동남아 순방을 위해 서울 성남공항에 환송을 나온 이 장관 어깨를 ‘의도적으로’ 두드리며 여기저기서 난타를 당한 ‘후배’를 공개적으로 두둔하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보스’가 힘내라며 다독여주자 기분이 업된 이상민 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 하지만 그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도, 고위 공직자의 책임 있는 자세도 아니다”라는 망언을 해 또 다시 사고를 쳤고 결국 뒤늦게 사과를 하는 해프닝을 연출했습니다. 여느 회사의 위기관리도 이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이 장관의 ‘좌충우돌’ 사려 깊지 못한 언행의 이면에는 윤 대통령의 사적인 감정에 의한 국정운영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정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대통령의 사감에 의한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돌발행동이 정국을 지배하고 있고 참모들은 그 뒷수습하기에 바쁩니다. MBC 전용기 탑승 제한 역시 언론대응을 하는 참모라면 아마 분명히 반대했을 사안입니다. 그 반대급부가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의 ‘간장종지’ 대응은 MBC를 ‘정파적인 언론매체’로 부각시키기보다 졸지에 언론자유의 상징으로 떠밀어주는 부정적인 효과만 낳았습니다.
158명의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참사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직·간접적 피해자와 공무원들과 사고에 충격을 받은 국민들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오히려 참사의 책임자인 이상민 장관을 위로하는 제스처는 민심에 대한 심각한 역주행입니다. 윤 대통령이 국가 최고지도자로서의 최소한 품격과 희생정신도 보여주지 못하고 일반 사조직 우두머리로서의 편협한 행보를 보여주는 것은 이태원 참사로 상처받은 민심을 두 번 울리는 행위입니다. 보스의 사나이다운 의리는 ‘윤석열 조직’에서 조용히 보여줘도 됩니다. 국가적 참사에 애통해하는 국민들을 위무하고 품격 있는 수습을 해야 하는 유일한 책임자는 바로 국가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뿐입니다.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에 대한 공적인 책임의식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제 ‘3포 정권’이 돼 가고 있습니다. 국가적 대형 참사에 대한 책임을 포기한 정권, 윤 대통령의 사감에 좌우되는 민심(지지율)을 포기한 정권, 그리고 책임과 민심의 포기로 인해 민주당과는 협치를 포기한 정권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3포’로 인한 윤석열 정권의 피해는 즉각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관련된 경찰국, 영빈관, 청와대 개방 등의 예산을 전액 삭감하며 대대적인 대 정부 투쟁에 나서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대선공약 사안까지 포기하면서 이루려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막연히 자유를 강조하지만 사방팔방 적을 양산해내고 민심과도 불화를 빚으면서까지 윤 대통령이 그리려는 미래의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무엇보다, 그는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을까요.
(여성경제신문 11월 15일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