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과 멀어지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애도기간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사후 수습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책임자에 대한 엄정한 조치를 공언하고 있지만 야당은 특검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자며 맞서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은 ‘불가피한 사고’라는 인식이, 야당은 ‘정치적 인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기나긴 정쟁의 터널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인식과 태도를 보면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국민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바로 다음날인 10월 30일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과 참사가 발생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마음이 무겁고 슬픔을 가누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윤 대통령의 첫 공식 발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에 사과라는 말은 빠져 있었습니다. 이후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발생 사흘 뒤 열린 국무회의에서 사고와 관련해 첫 공개석상 발언을 했습니다. 이날 윤 대통령의 공식 워딩 중 하나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인파·군중 관리)라는 생소한 단어와 드론 개발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 틀린 점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필자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던 점은 대통령이 크라우드 매니지먼트니 드론이니 하는 생소한 외국어를 먼저 언급하며 여론과 한참이나 동떨어진 현실 인식을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 정부만큼 대규모 시위 ‘진압’과 ‘군중 통제 관리’ 경험이 많은 국가도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윤 대통령의 ‘크라우드 매니지먼트’나 뜬금없는 드론 개발 발언은 이태원 참사의 본질을 단순한 군중 관리 실패로 축소하려는 책임회피성 언급으로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이태원 참사는 국민의 안전에 무한 책임이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국가적 인재입니다. 하지만 현재 여권에서는 경찰국 신설을 두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불만이 많은 경찰을 이번 기회에 대대적으로 손보려는 분위기입니다. ‘경찰 꼬리 자르기’로 이번 사건을 얼렁뚱땅 끝내려고 하면 제2의 이태원 참사가 또 발생할 것입니다. 대통령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성역 없이 책임자를 엄중하게 문책 처벌하는 선례를 남기지 않으면 대형 참사는 반드시 재발합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인식과 태도를 보면 참사의 엄중함을 너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은 이번에야말로 여야가 진영논리를 떠나 머리를 맞대고 후진적인 사회 안전망에 대한 철두철미한 대응 시스템을 만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이 이런 국민의 명령을 무시하고 외면한다면 민심의 크나큰 저항에 직면할 것입니다.
또한 이태원 참사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총체적인 여론관리 실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관계 전문가들이 할 법한 ‘기술적인 말’들을 참사 이후 첫 공식석상 워딩으로 선택함으로써 주말의 참극에 망연자실해진 국민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습니다. 참사 이후 공식 담화문에서도, 첫 공식석상에서도 대통령의 ‘사과’가 없자 국민들은 분노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태원 참사 책임의 주체이기도 한 윤 대통령은 그렇게 국가최고 지도자로서의 ‘의무’를 외면하다가 지난 4일 사고발생 닷새 만에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며 사죄했습니다. 이후 윤 대통령은 국가애도기간 동안 매일 조문을 하고 각 종교단체 행사에 참여해 기도를 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주긴 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민심을 조기에 수습할 골든타임을 놓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역대 정권 때마다 각종 대형 참사는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대통령마다 그 대응은 달랐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10월 10일 서해 훼리호 사고로 292명이 숨지고 이틀 뒤 “국민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때에도 사고발생 3일 후 곧바로 사죄를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임기 초인 1999년 6월 30일 경기 화성 씨랜드 화재사건으로 23명이 사망했을 때 바로 다음날 합동분향소를 찾아 사과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18일 300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 화재가 발생하자 사흘 뒤 인수위 회의에서 당선인 신분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발생 14일 후인 4월 29일에 공식 사과를 했습니다.
이렇게 따져 볼 때 윤석열 대통령의 참사 발생 5일 후 사과는 박근혜 전 대통령 다음으로 늦은 것이었습니다. 사실 윤 대통령은 이번 이태원 참사를 통해 지지율 침체를 겪으며 좀처럼 국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불신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진정한 국가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그런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습니다. 윤 대통령이 진성성 있는 사죄와 책임자 규명을 사건 직후부터 수없이 강조하며 무릎을 꿇었다면 아마도 진영을 초월해 국민들의 신뢰를 얻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이태원 참사는 국가의 안전관리 실패이자 대통령의 여론 관리 실패이기도 합니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정무적인 보좌를 제대로 받고 있는지, 아니면 받고 있음에도 본인의 성향대로만 하려고 그것들을 전부 무시하는지 의구심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민의힘 한 전직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전부터 윤 대통령에게 세세한 정무적 조언이나 코칭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국군의 날 행사 때의 엉성한 경례 자세라든가, ‘쉬어’를 생략하는 것이 세간에서 조롱거리로 희화화되고 그것이 대통령의 무능함과 직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윤 대통령이 조문할 때 국화꽃을 두 손을 모아서 들지 않고 한 손으로 든 것이 다른 인사들의 그것과 비교되는 장면이 지적되는 등 디테일에 너무 취약한 것 같다. 대통령이 정무적 조언을 받고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참모들이 세세한 것까지 조언을 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런 디테일한 점을 자주 놓치면서 그것이 곧바로 여론의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은 정치인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속담입니다. 조형물의 성패는 세부의 마감에서 결정되는 것처럼 정치도 사소한 문제에서 승부가 결정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정치인의 사소한 말실수나 언행이 큰 논란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숱하게 보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진보진영 인사들을 ‘쇼에 강하다’라며 불신하지만, 그만큼 세세하게 여론을 의식하고 그것에 조응하려는 노력과 진정성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윤 대통령 자신은 ‘진정성이 충만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가 공개석상에서 보여주는 언어나 행동은 상식이나 기본 예절에 동떨어진 경우가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현장을 방문해 관계자들에게 반말 투로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라고 말하는 동영상이 연일 회자되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사망자들이 대부분 포개져 압사(질식사)했음에도 ‘뇌진탕’이라고 언급한 것도 사고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어찌 보면 사소한 말실수이거나 본인의 진심이 잘 못 전달된 해프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50여명이 유명을 달리한 대형 참사에서 윤 대통령의 언행은 경솔하고, 때로는 무례하고, 또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 ‘사소한 언행’ 하나하나가 모여 여론을 눈덩이처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을 절망케 합니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 때 전시 연립내각을 만들어 국가절멸의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우리에게 대형 참사가 났을 때, 진보와 보수 모두가 한 마음으로 그 아픔을 함께하는 행렬의 맨 앞에 대통령이 서 있기를 바랍니다. 윤 대통령은 ‘크라우드 매니지먼트’(군중 관리)를 할 때가 아니라 군중과 함께해야 할 때입니다.
(여성경제신문 11월 8일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