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마지막 승부수
임인년 대통령선거의 해가 밝았습니다. 각종 신년 여론조사가 발표됐는데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오차범위를 넘어 10%포인트 이상 차이를 벌리는 결과가 나올 정도로 대세를 장악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위기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윤 후보의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와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회의감, 이준석 당 대표와의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윤 후보 위기의 기저에는 캠프 기득권세력의 권력독점욕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윤핵관’으로 대표되는 윤석열 후보 중심의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공유’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온갖 갈등과 내분이 분출하는 양상입니다.
이번 대선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대선 초반부터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으면서 레이스를 끄는 주된 동력이 됐습니다. 일찍부터 정권교체론은 대선판의 주된 상수였고 어떤 복잡한 방정식이 나와도 이 상수를 대입하지 않고는 해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후보의 급부상 또한 바로 정권교체론이라는 상수가 대입돼 나온 결과입니다. 윤 후보가 정치 입문 4개월여 만에 보수야당의 대선후보로 급부상한 것은 바로 정권교체론이라는, 팽팽 돌아가는 궤도에 그냥 올라타기만 하면 되는 손쉬운 결과에 힘입은 것이었습니다. ‘누구’를 국민의힘 대선후보 자리에 앉혀놓아도 정권교체론이라는 팽이 위에서 잘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윤석열 후보의 오판은 바로 이 부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정권교체라는 호랑이등에 올라탄 그 힘을 윤석열은 자신의 힘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겠지만 국민의힘 입당을 전후로 ‘파리떼’들이 달라붙게 되면서 그들의 감언이설에 윤석열은 전직 검찰총장에서 빠르게 야권의 제왕으로 등극하게 되는 신기한 체험을 하기에 이릅니다. 최근 당 내분의 뇌관이 되고 있는 ‘윤핵관’도 바로 여기에서부터 파생되는 문제입니다. 대선이 불과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민의힘은 현재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윤 후보의 공식 일정도 전면 중단됐고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6본부장’ 총사퇴 등의 초강수 쇄신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왜 불과 한 달여 만에 이렇게 갑작스런 위기에 빠진 것일까요. 부인 김건희 씨의 허위 이력과 뒤이은 사과 논란이 직접적인 타격이 되긴 했지만 보다 근원적으로 돌아보면 이 모든 내분의 밑바탕에는 ‘윤핵관’으로 대변되는 윤석열 기득권 세력의 권력독점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준석’과의 ‘불화’도 바로 캠프 주류의 기득권 지키기에 다름 아닙니다. 한국 정치의 오랜 병폐 중 하나는 권력독점(박정희식 독재권력)과 계파주의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때는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순간 정치생명 단절을 의미했기에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만 했습니다. 박정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권력의 순환궤도에 들어선 사람만이 권력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일찍이 한국 정치는 일부 군부독재와 결탁한 의회권력 엘리트들이 선민의식을 누리며 그렇게 ‘짬짬이’로 권력을 유지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권력을 분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권력의 나눔은 곧 박정희 궤도의 이탈을 뜻했기에 독재권력은 철저하게 인맥과 지연 등으로 ‘엮어’ 권력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이런 보수정당의 오랜 ‘습속’은 박정희 세력의 후예로 일컬어지는 국민의힘에도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친이와 친박의 권력독점과 전횡으로 보수정당의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고 급기야 탄핵이라는 국민의 ‘해체 명령’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과거 친이 친박세력은 대선을 통해 주류가 되면서 비주류의 의견과 ‘다양성’을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오인했고 무조건 그들을 쳐내기 바빴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뒤 몇 달 만에 정두언을 비롯한 소장파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이상득-박영준 체제로 정국을 이끌어가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말년에 교도소에 가는 불행한 정권으로 끝장이 났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일개 ‘수행비서’가 국회의원들 군기를 잡는 희대의 막장사건이 비일비재했을 정도로 ‘친박의 철옹성’으로 권력을 유지하다가 탄핵이라는 철퇴를 맞았습니다.
현재 윤석열 후보를 둘러싼 ‘파리떼’와 ‘윤핵관’들은 바로 친이 친박세력의 구시대 정치를 몸에 익히고 배운 세력들이 주축입니다. 캠프 내의 정무전략 핵심들은 과거 친이 친박의 ‘단독’ 집권전략을 이번에도 그대로 원용하고 있습니다. 윤 후보가 정치입문을 저울질 할 때 가장 먼저 달려갔던 인물 중의 한명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밑에서 핵심 보좌역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친박’이 몰락한 뒤 오갈 데 없던 그는 ‘윤석열’이라는 오아시스를 만나 ‘올인’을 하기로 했습니다. 주변에 윤석열 캠프 입성에 관해 여기저기 묻고 다니는가 싶더니 어느새 정무역을 꿰차고 앉아 현재 실세 중의 한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윤 후보 주변에는 검찰 출신 법조인들이 광범위하게 정무적 조언을 하고 있지만 현재 윤석열을 움직이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친이 친박의 권력독점 습성이 몸에 밴 ‘구시대’ 정치인들입니다.
이들 친이 친박 잔존세력들은 그들이 어떻게 권력을 잡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출신으로 중도확장전략에 ‘반노정서’를 활용해 집권에 성공했는데 이때 확실한 ‘이명박 사단’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들은 공천 때 친박은 아예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얼마나 친이의 공천장난이 심했던지 어떤 친이 실세 의원은 한나라당 배지만 달면 무조건 당선되는 특정지역에서 3선까지 노릴 정도였습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친이의 ‘친박 배제 리스트’가 돌아다니며 공천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이를 목도한 친박세력은 집권 이후 친이계는 철저하게 배제하는 인사원칙을 고수하며 복수를 해나갔습니다. 친이가 볼 때 한번 권력을 놓치게 되면 의원들 공천은 물론 세력 자체가 공중분해 된다는 것을 생생히 경험했던 것입니다.
이런 ‘학습효과’가 현재의 윤석열 캠프 주류들에게도 깊이 각인돼 있습니다. 이렇게 보수정당은 계파주의 혈통주의에 자신들도 모르게 순치돼 갔습니다. 그리고 윤석열 후보는 바로 이러한 친이 친박의 후예들과 손을 잡고 국민의힘에 큰소리치며 입당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친이 친박 재선 3선 출신 전현직 의원들이 새파란 신인에게 굽신거리고 충성경쟁을 벌이니 윤석열 후보로서도 국민의힘이 우습게 보였을 것입니다. 윤 후보가 지난 10월 “정신머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우리 당은 없어지는 게 맞다”고 일갈한 것도 바로 자신에게 온갖 아부와 아첨을 뜨는 ‘프로’ 정치인들을 일찍이 경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선에 두 번이나 실패한 까닭도 ‘7인회’ 등 계파주의와 엘리트 혈통주의 중심으로 권력을 독점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김영삼은 민정계와, 김대중은 김종필과 권력을 ‘분점’하면서 집권을 할 수 있었습니다. 노무현은 정몽준과의 단일화로 공동정부 수준의 권력분점을 승부수로 띄워 대통령까지 차지했습니다. 문재인도 안철수와의 단일화 실패가 대선 실패로 이어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는 오로지 친이 친박이라는 순혈들만의 힘으로 집권을 했기 때문에 독재수준의 일방적인 정국운영으로 치닫다 결국 몰락했습니다. 윤석열 후보도 바로 이들 두 전직 대통령의 실패한 길을 정확하게 되밟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윤석열 후보는 새로운 물결의 ‘큰형’이 아니라 ‘고인물’의 막내였던 것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윤 후보는 정치신인이라고 하면서도 국민의힘의 가장 병폐인 계파주의부터 배워서 그것에 완전히 함몰돼 있는 것 같습니다. ‘윤핵관’으로 대표되는 당 안팎의 구시대 기득권 세력의 권력독점 전략에 자신도 동화돼 있기 때문에 ‘이준석’같은 계파도 별로 없는 ‘일개’ 당 대표에게 권력의 일부를 나눌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그나마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경험과 나이 때문에 대우를 해주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합니다. 윤석열 캠프에서는 이전 정부 때도 다들 ‘윤핵관’들이 핵심적으로 선거를 이끌어갔다며 ‘윤핵관’ 논란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고 강변합니다. 하지만 친이 친박의 실패사례를 보았다면, 그래서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한다면 권력독점과 ‘친윤’ 순혈주의와 계파주의부터 깨부셔야 합니다. 보다 못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이 ‘작업’을 위해 선대위 전면쇄신에 나섰지만 회의적입니다. 윤석열 후보 본인이 계파주의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그의 지지율은 쉽게 반등하지 않을 것입니다.
윤석열 후보의 위기 본질에 이준석 대표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윤핵관’으로 대변되는 기득권 세력들의 편가르기와 권력독점 탐욕입니다. 지금이라도 당 내분을 해결하는 방법은 이준석 대표를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끌어안고 그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줘 선대위의 권력을 분점하는 파격적인 승부수를 던져야 합니다. 이 대표뿐 아니라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국민의힘 제 정파들을 모두 끌어안아야 합니다. 한줌밖에 안 되는 권력에 집착해 ‘우리끼리 해도 이길 수 있다’고 사탕발림을 내뱉는 아부꾼은 과감하게 쳐내야 합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1월 한달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위기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파격적이고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승부수가 나오지 않으면 대선은 끝나게 됩니다. 윤석열 후보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로 어떻게 여론조사에서 승리해 ‘안풍’덕을 보겠다는 미숙한 계산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안철수 대표와 공동정부에 준하는 파격적인 권력분점을 ‘약속’하지 않고는 단일화는 제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준석 대표가 단일화를 해도 윤 대표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것이라고 언뜻언뜻 내비치는 것도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정권교체론의 애드벌룬 위에 올라탄 윤석열 후보는 너무 높이 올라갔습니다. 마치 대선후보가 된 것이 자신의 힘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다가 이제 강력한 ‘현타’에 직면했습니다. 돌파구는 오직 하나, 혼자 먹으려던 사과를 이준석 뿐 아니라 선대위에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하지 못하는 국민의힘의 수많은 인재들과 골고루 나눠먹어야 합니다. 윤석열 후보는 김성식 전 의원이 주장한 바 있는 ‘연합’과 ‘연대’로 대선을 ‘함께’ 치러나가야 한다는 권력의 분점 전략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것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윤석열 후보는 거의 혼자 힘으로 거친 대권의 바다를 건넌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아니라 자동회전하는 정권교체론의 판 위에서 손쉽게 뛰어오른 대권후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나서’라는 미몽에서 깨어나는 것이 윤석열 위기 탈출의 첫 번째 루트가 될 것입니다.
(1월 4일 팩트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