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입문 4개월의 기적’ 윤석열의 행로는?
국민의힘 대선후보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선출됐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정치입문 4개월만에 제1야당의 대선후보가 되는, 한국정치 사상 초유의 새 역사를 썼습니다. 윤 후보는 대권도전 선언 이후 줄곧 야권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며 대세론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홍준표 의원은 여론조사에서 10% 이상 앞서고도 당원투표에서 크게 뒤져 막판 역전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윤석열 후보의 당선은 작금의 정치에 많은 숙제를 남기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의 정치경력이 없어도 대통령 후보에까지 뽑힐 수 있을 만큼 국민들은 기존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됐습니다. 또한 국민들이 얼마나 공평하고 공정한 세상을 원하고 있는지를, 현 집권세력의 검찰총장 출신이 야당의 대통령후보에까지 오른 ‘기적’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번 국민의힘 경선의 주인공은 단연 ‘0선’의 정치신인 윤석열입니다. 지난 6월 29일 대권도전을 선언한 이후 불과 넉 달 만에 제1야당의 대선후보로 ‘점프 업’을 했습니다. 그는 ‘여의도 문법’을 깬 최초의 대선후보로 기록될 것입니다. 일부 정치전문가들은 여론조사 민심에서 앞서고 있는 홍준표 의원의 당선을 예상하는 등 이번 경선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당원 투표율도 63%로 대박을 치면서 흥행 면에서도 단연 성공작입니다. 일각에서 민심이 결국 당심을 견인할 것이라며 홍준표 의원의 ‘기적’을 예견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결국 당심의 완전한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21만 34표(57.77%), 여론조사에서 13만 7929표(37.9375%)를 각각 얻었습니다. 홍준표 의원은 선거인단 투표에서 12만 6519표(34.8%), 여론조사 17만 5267표(48.2075%)를 획득했습니다. 선거인단 투표에선 윤 후보가 24%포인트를 앞선 반면, 여론조사 득표율에선 홍 의원이10%포인트 앞선 셈입니다. 이는 국민의힘의 전통적인 지지층이 강하게 결집한 결과로 분석됩니다. 선거를 며칠 앞두고 홍준표 의원의 당선 가능성이 거론되고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현상을 보이면서 윤 후보의 대세론이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국민의힘의 전통적 지지층들이 윤석열 후보에게 무섭게 결집한 것이 24%의 당심 압승으로 나타났습니다. 윤 후보가 전체 득표율에서 6%포인트 차로 비교적 여유 있게 승리한 것이지만 당원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민심에서 확실한 열세를 보인 윤 후보로서는 2030 세대 등 취약층과 중도층 민심을 끌어오는 게 최대의 본선 숙제로 남게 됐습니다.
반면 홍준표 의원은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를 10% 이상 누르며 선전했지만 결국 홍준표가 홍준표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됐습니다. 26년 정치인생 동안 이렇다 할 정치세력을 만들지 못했던, 그 빈약한 ‘대중성’이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됐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후보의 ‘급부상’을 사상 유례가 없는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윤석열’이라는 인물이 처음 여론조사 지지율 레이다망에 잡힌 것은 지난해 1월 검찰총장 신분임에도 차기 대권주자로 꼽힌 것입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갤럽이 2020년 1월 14~16일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정치 지도자, 즉 다음번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응답자의 1%는 윤석열 후보라고 답했습니다. 갤럽 조사는 보기를 제시하지 않는 ‘자유응답’ 방식인데 윤 후보는 이때 처음 민심의 대권 가시권에 든 것입니다. 그 후 윤 후보의 지지율은 한 달 만에 4%포인트 뛰어올랐고, 6월에는 10.1% 선호도로서 3위로 치솟았습니다. 그리고 10월 국정감사에서 ‘퇴임 후 국민을 위한 봉사’ 발언으로 15%까지 점프하며 ‘이낙연 이재명’의 여권후보와 함께 확실한 3강으로 자리잡았고 그 흐름이 결국은 대세론으로 이어져 국민의힘 최종 대선후보로까지 등극했습니다.
윤 후보의 이런 대세론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이 떠받치고 있습니다. 바로 공정과 평등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의식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만큼 국가경제는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그에 따르는 사회적 신뢰 자본은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의 핵심에 바로 정치가 있습니다. 조국 사태 등으로 진보진영의 민낯이 드러나고 대장동 사태 등으로 힘 있고 빽 있는 일부 소수세력의 권력 나누기와 부패가 여전히 만연하고 있습니다. 2030이 느끼는 사회적 불평등에 박탈감과 기회균등의 법칙이 좌절되는 현 상황에서 ‘윤석열’은 그것을 일거에 해소하는 ‘흑기사’로 소환된 것입니다. 이런 시대정신이 여론조사의 일관된 지지흐름으로 발현됐고 그 ‘힘’이 결국은 보수야당의 대선후보로까지 이끌었습니다. 여기에다 보수진영의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더해져 최종투표에서는 당심이 윤석열 승리를 견인하는 결정적 동력이 됐던 것입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발표 전 ‘윤석열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대체로 예상했고 결국 이것이 들어맞았습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윤 후보의 당선 가능성보다 만만한 상대를 고르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홍준표 의원에 비해 두드려 깰 것이 훨씬 많은 윤 후보가 이재명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계산한 것입니다. 윤 후보가 경제 외교 등 거의 모든 국가주요현안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재명 후보와 1대1 토론을 하게 되면 국민들이 금세 윤석열의 빈약한 국정운영능력을 알아차릴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또한 비리와 의혹도 많습니다. 본인의 고발 사주 의혹, 가족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등에도 얽혀 있어 이에 대해 민주당이 융단폭격을 퍼부을 경우 윤 전 총장이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또한 대장동 사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재명 후보로서는 윤석열 후보의 비리 의혹에 대해 맞불을 놓아 난전을 유도한다면 이 후보의 약점도 상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 경험으로 다양한 국정현안을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는 이 후보가 다양한 대안제시로 정책경쟁을 계속 유도할 경우 윤 후보의 밑천이 금방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경선에서 보았듯이 윤 후보가 웬만한 약점에도 끄떡하지 않고 당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배경은 바로 정권교체 적임자라는 단 하나의 믿음 때문입니다. 이런 흐름이 중도무당층에도 이어져 공정과 공평한 세상의 화두가 대선을 가르는 단 하나의 선택기준으로 제시될 경우 이 지사의 만 가지 ‘기술’도 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윤 후보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정권교체’와 ‘공정’으로 대선구도를 단순명료하게 만들 경우 이 후보의 복잡한 대응방안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최종결과 발표일에 “네 분의 후보 중 어떤 후보가 나가도 부도덕하고 무능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당연히 이길 수 있지 않겠나”라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실제로 여론조사 지표를 보면 정권교체 응답률이 정권재창출보다 나날이 더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약한’ 후보를 내세워도 이길 수 있다는 국민의힘의 ‘근자감’은 대장동 사태로 좀처럼 대중적인 어필을 하지 못하고 어색해하는 이재명 후보의 다소 무거운 발걸음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윤석열 후보에게 ‘애증’의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잦은 실언과 지지율 정체로 홍준표 의원에게 역전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김종인 전 위원장은 사실상 윤 후보를 공개지지하며 분위기를 잡아 나갔습니다. 윤 후보는 김 전 위원장을 원톱 총괄선대위원장에 임명해 사실상의 ‘권력분점’으로 대선을 치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윤 후보가 어려울 때마다 긴급조언을 해주고 버팀목이 돼준 김 전 위원장을 중용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됐습니다. 당연히 그것에 준하는 ‘권력’도 얹어줘야 합니다. 윤 후보도 경선 때부터 김 전 위원장을 만나 자신이 대선 후보가 되면 당 선대위에 참여해달라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렇게 멍석이 깔렸다면 김종인 전 위원장으로서는 거칠 게 없습니다. 경선발표 전 일찌감치 위험을 무릅쓰고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기 때문에 그 ‘지분’으로 주변의 ‘파리떼’들을 확실히 정리할 명분도 생겼습니다. 윤석열 후보도 힘을 몰아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위원장이 당에 합류하면 선거 전략과 메시지, 정책 등에 모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등 사실상 ‘원톱’의 지위를 누리려고 할 것입니다. 윤 후보 주변에 일찌감치 포진한 정진석 권성동 의원 등의 중진측근들과 권력투쟁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김 전 위원장 성향상 확실한 전권을 위임받은 뒤 선대위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측근들을 대거 포진시키고 사실상 윤석열 후보의 ‘상왕’으로 행세할 것이 예상됩니다. 윤 후보가 과연 어느 선까지 김 전 위원장에게 권력을 쥐어줄지 관심을 모읍니다.
(11월 5일 팩트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