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재명 차기 밀약설 솔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4주년을 맞아 특별연설을 했습니다. 이날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 안정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점이 지난 4년 동안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밝히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는 “부동산 문제만큼은 정부가 더는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비리까지 겹쳐지면서 지난번 보선을 통해서 정말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고 털어놨습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역대정권 최고의 후반기 지지율(36%)로 다소 체면은 세웠지만 부동산 정책만큼은 할 말이 없게 됐습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에 대해 ‘사과’를 하자마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다렸다는 듯 신속하게 자신의 반응을 보탰습니다. 이 지사는 대통령 기자간담회 몇 시간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람이 만든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수 있고, 해결책은 창의적으로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무수한 정책 가운데 선택하는 것이 대다수다. 효율적인 정책일수록 기득권의 저항이 크기 마련이니 정해진 방향에 따라 구체적 정책을 만들어 시행하는 고위 관료들의 국민중심 사고와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의 사과에 ‘쉴드’를 쳐주었습니다. 문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 실패를 사과한 것에 대해 그 책임을 ‘대통령’이 아닌 ‘관료들의 태만’으로 프레임을 설정한 것입니다.
이런 이재명 지사의 즉각적인 문 대통령 ‘비호’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여러 가지 반응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이재명 대권 교감설’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 실패를 사과하면서 자칫 그 모든 책임이 대통령 개인에게로 흐를 뻔했지만 이 지사가 그 책임을 관료들의 태만쪽으로 프레임을 돌리면서 문 대통령의 책임론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이 사전에 조율을 해서 ‘문재인 사과-이재명 해명’의 각본을 만들었다는 것이 ‘교감설’의 요체입니다.
이 ‘교감설’의 포인트는 이재명 지사가 여권 내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라는 것입니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하나의 민감한 이슈를 가지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상황 정리를 해버린 모양새입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양측의 ‘교감’을 두고 이철희 정무수석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수석은 청와대 입성 전 한 방송에서 올해 초 이낙연 의원의 사면론 제기와 실패에 따른 원인을 짚은 바 있습니다. 당시 이 수석은 이에 대해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낙연 의원이 사면론을 띄울 때 이를 청와대와 조금이라도 사전 조율을 해서 집권여당 대표가 사면론을 언급하고 청와대가 이를 즉각 ‘긍정적 검토’ 형식으로 하나의 주고받는 시나리오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이 의원 측이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고 청와대가 이를 모른 척하자 혼자 덤터기를 쓴 꼴이 돼버렸다‘며 아쉬움을 나타낸 바 있습니다.
문 대통령 취임 4주년 성명발표에 직접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이 수석으로서는 대통령의 치명적 약점인 ‘부동산 정책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쪽으로 프레임을 잡았고, 이를 차기권력인 이재명 지사가 받아 문 대통령에게로만 향하는 책임론의 부담을 덜어주는 식으로 ‘작전’을 짰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년 대선을 1년 정도 앞두고 친문은 자파의 유력한 대권주자가 부상하지 않는 답답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고 이재명 대세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형국입니다. 친문 전재수 의원이 경선연기론을 계속 주장하고 있지만 당내의 유력한 흐름으로 연결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특정정파의 주자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주려고 현재의 당헌당규를 억지로 개정하는 것에 대해 명분이 별로 없고 계파 간 권력싸움으로 비쳐지는 것이 큰 부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안정적인 하산을 위해 유력주자 이재명 지사와의 협력체제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청와대가 상호 대권 밀약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재명 대세론에 태클을 걸지 않는 선에서 안정적이고 중립적인 대권주자 관리를 해줄 경우 이 지사로서는 천군만마를 얻게 됩니다. 그 ‘만마’의 앞에 이철희 수석이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재명 지사와 이철희 수석은 방송 출연 등을 계기로 관계가 친밀해졌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철희 신임 수석 발탁을 두고 “이재명 지사와 청와대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흘러나왔습니다.
사실 현재권력이 차기권력을 긍정적으로 밀어줄 경우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은 높았던 것이 역사적 사례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노태우-김영삼, 이명박-박근혜의 조합이 정권 재창출 성공의 예입니다. 하지만 노무현-정동영, 박근혜-탄핵의 경우는 차기 권력과의 불화 또는 차기 주자 불용인 끝에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사례입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이명박-박근혜의 정권 재창출 시나리오를 벤치마킹 할 수 있습니다. 친이세력은 친박과 분당 직전까지 가는 갈등을 빚기는 했지만 수도이전 문제를 기점으로 ‘박근혜’라는 미래권력을 수용함으로써 비교적 순탄하게 정권 재창출을 이뤄냈습니다. 문 대통령도 비록 정체성과 코드는 맞지 않지만 이 지사를 차기권력으로 인정하고 그의 ‘마이웨이’를 용인해줄 경우 여권 내 정권 재창출 시나리오는 절반 가량 이뤄질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문 대통령 부동산 사과와 이 지사의 ‘관료 책임론’ 백업은 차기대권을 두고 양측이 일종의 시범적인 협력관계를 내보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역대 대선에서는 ‘지지율이 깡패’라는 일종의 경험칙이 작동했습니다. 지지율의 우위를 토대로 대세론을 형성할 경우 쉽게 그 우세와 선점의 방벽을 무너뜨리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재명 지사가 대선이라는 가장 역동성이 강한 정치 이벤트에서 현재권력과의 우호적인 관계설정만으로 밀어붙일 경우 그 자체로 안일한 대권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이재명 지사의 대권 길 찾기는 복잡다단한 미로 속으로 한층 더 빠져들고 있습니다.
(5월 11일 여성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