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의 마지막 무대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6일 열렸습니다. 김부겸 후보자는 자신을 향한 여야의 지적에 연신 “부끄럽다”며 몸을 바짝 낮췄습니다. 특히 김 후보자는 자동차·과태료 체납 전력과 관련해 ‘준법 의식이 결여됐다는 비판이 있다’는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의 지적에 “부끄럽다”는 말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며 ‘사죄’를 했습니다. 김 후보자 부부는 32차례에 걸쳐 자동차세나 과태료 체납으로 차량이 압류되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일반 상식으로는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법을 밥 먹듯이 어기는 사람이 어떻게 국무총리를 할 생각을 하지?’라고 되물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해당 차량이었습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007년 4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소유하던 SM525V 차량이 2007년 8월 과태료 체납으로 인해 3차례 압류 등록됐고, 김 후보자의 배우자는 1996년부터 2018년까지 쏘나타투2.0골드, 티코, 뉴EF쏘나타, SM5 등 차량을 총 29차례 압류당했습니다. “지방세, 범칙금 체납이 일상화된 수준”이라는 비판에 김 후보자는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물론 소유차량들이 대부분 낡고 오래된 ‘생계형’ 소·중형차라는 사실이 김 후보자 부부의 ‘법 경시’ 허물을 가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그를 지켜본 기자들이나 민주당 주변 인사들이 평가하는 ‘김부겸’은 적어도 재물에 집착하고 탐욕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라는 ‘인물평’이 늘 따라다닙니다.
김 후보자의 보좌관이었던 이진수 씨는 6일 자동차 과태료 체납 32건과 관련해 “이 모두 후보자의 잘못이다. 아내 고생시킨 죄, 의원이 직접 운전하고 다닌 죄”라고 해명을 해주었습니다. 김부겸은 ‘가족 건사’라는 자기관리 면에서는 낙제점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김 후보자는 이유미 씨와 1982년 결혼한 뒤 2000년까지 ‘백수건달’이었다고 합니다. 이번 체납 사건도 민통련 간사부터 국본 집행위원장, 민주당 당직자, 88년과 96년 낙선, 98년 군포 지구당 위원장을 맡으면서 20여 년간 가계를 자신의 부인에게 맡겨 일어난 ‘부끄러운 과거사’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김 후보자를 둘러싼 청문회의 쟁점은 대부분 오래전 일어난 개인적인 ‘추문’ 정도였고 권력형 비리같은 중대비리 유형은 없었습니다. 이는 국회의원 4선을 거치면서 이미 검증된 사안이기도 합니다.
김 후보자를 정작 검증해야 될 부분은 ‘정치영역’입니다. 김부겸 후보자는 한나라당에서 정계에 입문하여 국회의원에 처음으로 당선(2000년 경기 군포)되었으나,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후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바꾸었으며, 이후 4선 의원을 역임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행정안전부장관을 역임한 데 이어 국무총리에까지 올랐습니다. 1988년 한겨레민주당 당적으로 13대 총선(서울 동작 갑)에서 3.25%(5위)로 낙선하면서 정계에 입문한 지 33년만에 일인지하 만인지상 자리인 총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정치인의 이력으로 보면 성공한 축에 드는 것 같습니다.
김 후보자의 총리행은 지명받기 전 이미 한달여 전부터 정치권에 널리 퍼졌습니다. 지난해 총선 때 대구에서 생환했다면 이번에 대권도전으로 직행할 수 있었지만 그는 또 다시 좌절을 맛봐야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어렵게 다시 대권도전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선택받은 지위’로 올라섰습니다. 대권으로 가는 마지막 이력인 국무총리를 하면서 그는 차차기에 다시 한번 도전해볼 수 있는 동력을 얻었습니다. 대권주자의 권력관리용으로는 최고의 훈장을 받은 것입니다. 그에게는 ‘천우신조’인 셈입니다. 이런 김 후보자를 배려한 문 대통령의 의중은 어땠을까요? 영남에 계속 도전하면서 지역주의를 타파하려는 당의 소중한 대권주자를 살리는 의미도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퇴임한 후에도 김 후보자가 유력한 대권주자로 남게 된다면 ‘친 문재인’ 인사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떠나도 민주당에 ‘우군 대권주자’ 한 명을 확실히 박아두는 셈입니다.
동시에 문 대통령의 하산 도우미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역대 정권의 마지막 총리는 실세가 거의 없었습니다. 임기 말 내각에 들어가서 ‘욕받이’를 하고 싶어하는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관료 출신을 국정 운영의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겨 왔습니다. 대통령이 힘이 있을 때는 대권주자나 권력실세를 총리에 앉혀 국정을 동반 운영하거나 차기주자의 경력을 관리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레임덕이 몰려오는 임기 말에는 그런 역할이 사라지기 때문에 관료들의 복지부동과 ‘근태관리’를 하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김부겸 후보자는 차차기를 노려볼 수 있는 유력한 대권주자라는 점에서 앞으로 그의 행보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김부겸 국무총리 카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여러모로 유용한 선택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김 후보자를 통해 친문 일방독주의 프레임을 희석시키고, 대통령의 화합통합 메시지 상징으로 활용되고, 보수정당(한나라당) 출신으로 대야 관계도 원만하게 풀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계도 있습니다. 김부겸이라는 대권주자는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마지막 대권도전 티켓을 거머쥐는 행운을 잡았지만 자신만의 한계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자기정치의 근력과 돌파력이 약합니다. 신중하고 신중한 그의 정치성향은 돌다리를 두드려본 뒤 건너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김 후보자는, 이회창 씨가 국무총리로 임명된 뒤 김영삼 대통령에게 사표를 던지며 자기정치의 무대로 올라섰던, 그런 결정타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신중한 탓에 타이밍도 언제나 한발 느렸습니다. 2018년 민주당 대표 도전 때 이리저리 재다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고, 2020년 뒤늦게 당 대표에 도전했지만 결국 패배했습니다.
김부겸을 두고 ‘사람은 좋은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평의 공통점은 그가 너무 신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실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 그는 마지막 대권도전의 무대에 섰습니다.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질 수 없는 김부겸만의 시간입니다. 대통령 빼고는 이제 눈치 볼 사람도 없습니다. 김부겸은 국무총리라는 자리를 오롯이 자신만의 무대로 즐길 수 있을까요?
(5월 9일 여성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