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의 원대한 꿈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최근 내년 지방선거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대권 행보와 당내 경선 참여 등을 위한 도지사직 사퇴 여부와 관련해서는 명확한 입장 표명을 보류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원 지사가 내년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원희룡 지사의 대선출마가 기정사실화 되면서 야권의 대권주자 ‘예선 편성표’도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최근 두 번째 대선 도전 의사를 밝혔습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미 지난 대선에서 한번 심판을 받은 바 있어 분위기를 다시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안철수 대표는 최대한 국민의힘 합류 시기를 늦출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의힘에서 대선후보 경선 흥행이 지지부진할 때 안 대표가 전격 합류하며 판을 키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안 대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힘을 많이 빼 새정치 이미지가 많이 소진된 상태라 페이스메이커로 경선흥행을 주도하며 상황을 엿볼 것 같습니다. 홍준표 의원은 ‘보수 적자’를 자처하고 있지만, 4월 재보궐 선거에서 드러난 2030의 투표성향과 시대정신을 고려할 때 국민의힘 대선후보 카드로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국민의힘에서 오는 11월 대선후보 경선을 통해 한 명의 주자를 뽑고, 윤 전 총장이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후보 단일화를 통해 야권의 대권주자가 최종 결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니면 윤 전 총장이 장외에서 여의치 않을 경우 전격 입당을 하고, 안철수 대표도 참여하는 ‘원샷 경선’도 한 가지 방안입니다. 홍준표 의원도 복당이 이뤄지면 이 경선에 나설 수 있습니다. 야권의 대선후보 결정은 이 두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원희룡 지사의 행보는 상당히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희룡 지사는 국민의힘이 아껴둔 마지막 카드에 가깝습니다. 원 지사의 강점은 보수의 정체성을 계승 유지시키는 ‘적자’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그는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한국 보수정당의 계파 중 개혁적인 성향을 띄는 소장파의 원조 멤버였습니다.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으로 대변되는 소장파는 박근혜 정권 출범 전까지 당의 다양성과 개혁성을 담보해내는 상징적인 계파였습니다. 이들 소장파는 이명박 정권 때까지만 해도 이명박-이상득 주류 체제에 저항하며 친이 주류의 일방독주를 저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상득계의 진압으로 그들의 저항은 갈수록 그 강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당의 보수기득권 세력에 맞서 개혁적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소장파는 보수 우익 일변도의 당을 중도층 확장으로 다변화하는 ‘통문’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일체의 계파 활동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만 해도 명맥을 유지하던 소장파는 박근혜 정권 때는 거의 소멸되었습니다. 차기 대선주자도 키우지 않고 오로지 ‘박근혜’ 중심으로 정국을 운영하던 폐해는 탄핵이라는 민심의 응징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남원정’그룹의 대다수는 2017년 새누리당 분당 때 유승민, 김무성 등과 함께 바른정당 창당에 참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국민의힘은 친박의 잔류파들이 아직도 ‘탄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당권에만 눈이 멀어 있습니다. 개혁적이고 실용적인 노선의 소장파들은 이렇다 할 계파를 유지하지 못하고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남원정’에는 이제 원희룡만 남았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소장파의 마지막 주자인 원희룡 지사가 이번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해 그들이 그동안 내세운 보수의 개혁 정체성을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최근 제주에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를 만났다는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원 지사는 한 언론에 “(김 전 위원장 말로는) 나를 포함해 국민의힘이나 야권 전체에 아직 후보다운 후보가 아무도 없다고 했다. 흔히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지율을 얘기하지만 3개월 뒤, 6개월 뒤를 생각하면 허망할 수도 있다. 그나마 지금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쏠리기에 제대로 국가를 떠받칠 수 있는, 민심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야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의 ‘워딩’을 그대로 전한 것인데요, 윤석열 전 총장이 그에게 입질을 하지 않자 원 지사를 통해 ‘다른 주자를 고를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 ‘다른 주자’는 원희룡 지사일 것입니다.
김 전 위원장으로서는 최소한 자신의 입맛에 맞고 ‘고언’을 들어줄 만한, 그런 만만한 상대를 카운터파트로 정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원 지사도 하나의 유력한 카드입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김 전 위원장의 ‘간택’ 카드가 윤석열에 머물지 않고 원희룡으로까지 확장될 경우 야권의 대선후보 경쟁 구도는 더욱 복잡다단하게 전개될 것입니다. 김 전 위원장은 중진들의 온갖 견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뚝심 하나로 오세훈 서울시장 카드를 성공시킨 좋은 기억을 머리에 새기고 있을 것입니다. 김 전 위원장은 원희룡 지사 카드를 ‘제2의 보궐선거 돌풍’으로 이끄는 주력마로 키우려고 하거나, 그를 움직여 윤 전 총장의 입질을 유도하려는 의중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원 지사와 김종인의 ‘연대’ 가능성은 분명 기분 좋은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1%대 지지율의 벽에 막혀 고전 중입니다. 웬만한 주자였으면 ‘드롭’을 선언해야 마땅하지만, 후보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의힘으로서는 경선 흥행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주자입니다. 동시에 대선을 뛰지 않은, 보수 제1야당의 마지막 남은 중도개혁 주자라는 상징성도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소장파’라는 중도확장 파이프라인을 통해 꽉 막힌 우편향 일방통로 혈을 뚫어야 그나마 미래가 있습니다. 원희룡은 과연 미래로 가는 그 파이프라인을 잡을 수 있을까요?
(4월 27일 여성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