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패’ 몰린 YS, 총선 물갈이 위해 던진 파격 승부수는…역대 대통령 공천의 정치학
21대 총선을 6개월 앞두고 여의도 정치권에는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여야가 인적 쇄신 경쟁전에 뛰어든 만큼 역대급 물갈이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과감한 물갈이를 통한 인재 영입이 총선의 흐름을 바꾼 경우가 적지 않다.
정치권에서 성공한 물갈이 공천으로 손꼽히는 것은 1996년 15대 총선 당시 대통령이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신한국당 사례다. 집권 3년 차 국정 운영을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 YS는 민중당 출신인 이재오 김문수 이우재 전 의원 등 재야 운동권 인사들을 영입해 파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법조계에선 ‘모래시계 검사’로 이름을 날린 홍준표 전 의원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부검을 실시해 진실 규명에 기여했던 검사 출신 안상수 전 의원을 영입해 눈길을 끌었다. YS는 재임 초 대립했던 ‘대쪽 총리’ 이회창 전 대표도 다시 끌어안았다. 김무성 홍문종 의원 등 현역 의원도 이때 초선 의원이 됐다. 당시 전문가들은 모두 신한국당의 필패를 점쳤지만 이 같은 인재 영입으로 신한국당은 139석을 얻어 1당을 유지했다.
같은 시기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도 추후 정계를 이끌게 될 개혁 성향의 신인을 대거 영입했다. 재야 운동가였던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과 소설가 출신 김한길 전 의원 등을 영입했고 이때 정치권에 입문한 정동영 정세균 천정배 추미애 의원은 여야 당 대표와 국회의장 등을 지내며 중진 의원이 됐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DJ는 선제적으로 ‘젊은 피 수혈론’을 내세우며 세대교체 바람을 주도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현재 원내대표인 이인영 의원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우상호 송영길 의원 등을 비롯한 ‘386운동권’을 대거 영입했고 이들은 현재 여당의 주요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됐다.
2016년 20대 국회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인재 영입에 대해서도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민주당은 경찰대 교수 출신인 표창원 의원, 시사평론가였던 이철희 의원, ‘세월호 변호사’로 불린 박주민 의원 등 분야별 전문가들을 공천해 당선시켰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옥새 파동’ 등 반사이익도 얻었지만 민주당은 123석을 얻어 1당이 됐다.
반면 인재 영입이 부작용을 일으킨 경우도 많다.
2004년 17대 총선과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인재 영입이 큰 변수는 되지 못했다. 2004년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창당 몇 개월 만에 급하게 총선을 치른 탓에 일부 지역구에서는 제대로 후보를 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인물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총선 직전 거세게 분 탄핵 역풍에 힘입어 전체 299석 중 과반인 152석을 얻었고 108명의 초선 의원을 탄생시켰다. 반면 최대 위기를 맞은 한나라당은 나경원 유승민 이혜훈 의원 등 40대 정치 신인들을 전진 배치했다.
반대로 2008년 18대 총선에선 이명박 정부 초기의 높은 지지율과 ‘뉴타운 광풍’에 힘입어 여당인 한나라당이 153석을 확보했다. 당시 통합민주당의 손학규 박상천 공동대표는 박재승 변호사를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영입해 현역 의원 24명을 탈락시키며 물갈이를 시도했지만 선거 결과는 81석에 그쳤다.
2012년 19대 총선은 여당에 ‘잘못된 영입’의 후폭풍을 절감하게 했던 선거였다. 민주통합당은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 패널이었던 평론가 김용민 씨를 영입했지만 김 씨의 ‘막말 방송’이 논란이 되면서 파장이 컸다. 한명숙 대표의 ‘노이사’(친노무현-이화여대-486) 중심 공천도 논란이 되면서 악영향을 줬다.
정치권에서는 김영삼-김대중 정권 때 새 인물 영입과 물갈이가 가장 번성했다고 평가한다. 이는 1인 중심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동안 재야의 거물 정치인으로 지내오면서 광범위한 인재풀을 확보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두 사람의 당 장악력과 카리스마가 남달랐기 때문에 새 인물을 영입하는 데 그리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당에 착근하는 것도 영입인사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두 거물지도자의 손에서 어느 정도 '길러졌다'는 표현이 맞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집권한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이런 강력한 당 리더십은 사라졌다. 노 전 대통령 자신이 거의 혈혈단신으로 '총재'직에 올랐고 그를 지원해주는 세력도 약했다. 그래서 공천을 줘도 노 전 대통령과 신진영입인사들간의 끈끈한 동지의식은 희박했고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면 그에게 등을 돌리는 매정한 풍토가 생겨났다. 정치권에서 총선 공천에 대해 "줄만 잘 대면 거저얻는 '로또'"라는 인식이 처음 퍼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공천이 '장사'로까지 인식되던 때가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 때였다. 정치에 별다른 뿌리가 없었던 기업인 출신 이 전 대통령에게 정치인의 입문과정인 '공천'은 정치철학과 가치관 태도 등의 기준이 아닌 자신에게 몇 점 정도 이익이 되는지만 철저하게 따진 결과가 공천으로 이어졌다. 친이계가 있었지만 이념이나 철학보다 '이명박' 브랜드를 보고 모인 일종의 사교클럽이었다. 친이의 공천 장난질이 도를 넘어면서 친박이 분화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친박도 공천에 더욱 집착하는 반작용의 계기가 된 것이 이명박 공천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천도 '이명박 브랜드' 공천 시즌 2였다. 오매불망 '박정희-박근혜' 기준에 따라, 충성도에 따라 공천이 이뤄졌다. 여기에 친이에 배척을 당한 복수심까지 더해져 인물보다는 '친 박근혜 성향'과 충성도가 최고의 덕목으로 매겨졌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인 총선이 내년으로 다가온다. 우리의 총선 공천은 김영삼-김대중 때의 인물 위주, 노무현 때의 정치이념 위주, 이명박-박근혜 때의 계파 위주의 큰 물줄기로 이뤄져왔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은 2020 총선 공천의 물줄기를 어디로 돌리게 될까?
문재인 대통령은 2016 총선을 1년여 앞둔 4.29 선거 참패 뒤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그는 “계파 패권적 공천이나 계파 나눠 먹기식 공천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다음 총선의 공천은 새로운 제도에 의해 투명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대표 개인의 자의가 개입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천 스타일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정치철학-계파를 뛰어넘는 시스템 공천이 문 대통령의 원칙이 될 수 있다. 지난 2016년 총선 때 민주당은 국민의당 출현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었지만 123석으로 제 1당을 차지하기는 했다. 하지만 2위 새누리당과는 불과 1석 차이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19대 총선의 127석에 비교하면 오히려 의석수가 줄어드는 사실상의 패배였던 선거였다. 문 대통령의 공천 성적으로만 보면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출현으로 지지층이 분열된 것이 크게 작용했지만, 결과적으로 분열을 막지 못한 책임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민주당이 선전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당시 민주당은 지역기반인 호남계 의원들이 대거 국민의당으로 탈당해 야권이 분열하는 등 전망이 좋지 않았다. 그때 민주당이 하루에 1~2명씩 살라미식 인재영입 발표를 했고, 이른바 어벤저스 팀을 만들어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민주당 내부에서 나오기도 했다.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는 내년 총선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상상을 초월하는 물갈이와 새로운 인물 영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공천 철학과 정치력도 그래도 투영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인물-이념-계파를 뛰어넘는 문재인만의 새로운 공천 정치학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2020년 21대 총선의 결과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천 정치력을 새롭게 평가할 것이다.